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영 Aug 31. 2019

SCL

“언제 다시 이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네요. 대신 제가 친구 하나 소개해줄게요.”

20년간 거래해 오던 바이어가 회사를 떠나면서 다른 업체를 소개해 준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생각해보면 경쟁사를 소개해준 샘이라 퇴직한 바이어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소개받은 바이어를 5년 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점심 먹으면서 와인 한잔하고 오후 미팅이 길어져 저녁 먹으면서 또 와인 한잔하면서 바이어와 가진 미팅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이 바이어는 남미 바이어 중에 유일하게 담배도 피워서 담배를 좋아하시던 우리 회사 사장님과 죽이 잘 맞아 담배 피우는 시간 조차 비즈니스에 큰 몫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미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연락이 두절됐다. 출장 중 우리 회사에 요청했던 견적을 이메일로 보내주면 답장이 없었다. 가격이 비싸서 못 사겠다던지 아예 다른 업체랑 거래 중이라던지 이런 말을 해줄 법도 한데 전혀 한 줄 답장도 오지 않았다. 전화하면 여기저기 돌려지다가 끊어질 뿐이었다.


그러다 한 해가 지나 다음 해가 되면 또 출장길에 만난다. 양상은 똑같다. 출장 중 미팅 때는 엄청 관심을 보이다 돌아서 한국에 오면 연락 두절된다. 가타부타 말이 없다. 좋습니다 싫습니다 끊어내는 맛이 없다.

5년간 똑같았다.

그런데 왜 이 집을 꼭 만나야 하냐고 사장님께 진지하게 물어봤다.

“어느 시장이라도 마찬가지야. 한 번이라도 팔아봤으면 또 팔 수 있을 거 같거든. 그래서 계속 오는 거야.”

짝사랑 5년 했으면 이제 그만 마음을 접을 때도 되지 않았냐 반문했다.

“넌 그럼 연애하다 헤어졌다고 다시 연애 안 할 거냐?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그래 하는 데까지 해보자.

호텔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이름이 뭐냐고 묻길래 초이라고 했더니 결국 또 이름이 잘 못 적혔다. 그래도 커피는 마셔야지.

여기는 짝사랑의 나라 칠레, 산티아고



매거진의 이전글 LI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