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영 Aug 18. 2019

LAX

“니는 장가는 언제 갈라 카노?”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엄마의 잔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시작되면 나는 조건반사처럼 말도 안 되는 드립을 시작한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지금 등산 중인데 너무 높이 올라왔나 봐요. 잘 안 들리네요~”

이 돼먹지 못한 드립을 엄마는 야무지게 받아치신다. 칠순을 몇 년 앞둔 지금에도 당신이 즐겨 치시는 탁구 스메싱처럼. 생각해보니 난 아들로 태어나 엄마랑 탁구를 치면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아 진짜 등산한다꼬? 어느 만큼 높이 올라갔는데?”

이 대목에서 난 아무렇지 않게 입방정을 떨다가 곧 잘 망한다. 사실 엄마랑은 길게 얘기하면 항상 망한다.

“여기 지금 아파트 13층 높이쯤 되는데 이야 정말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안 들리네요.”

망한 거다.

“니 지금 느그 집에 있으면서 거짓말하면 엄마한테 혼난데이~ 니 그카고 혼자 살다가 #%€<~••• 우짤라 카노!”

엄마의 포헨드 스트록이 우리 진영의 구석 모서리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나이 먹은 후 엄마와의 관계에도 변화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한다. 적당히 사무적일 필요도 있겠지. 몇 번은 진심을 담은 멘트들을 머릿속에는 준비한 적도 있다. 아들이 나이 환갑이 되더라도 아들의 대소사는 아들의 마음이 먼저 아닐까요 같은 말들.

그러나 현실은 다시 어리광 섞인 드립들 뿐이다. 나는 포헨드 스트록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으니까. 엄마처럼 정식으로 레슨을 받았어야 했나.

다음에 또 잔소리하시면 백화점 지하 4층 주차장이라 폰이 안 터진다고 말해볼 참이다. 물론 엄마의 기습적인 백핸드 푸시에 대비해야겠지만.

LA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창문 덮개를 닫아달라는 승무원들 지시가 있었지만, 나는 굳이 승무원들이 지나간 틈을 타 다시 덮개를 열었다. 괜히 태평양 바다의 해돋이를 오롯이 기다렸다가 보고 싶어서. 그리고 해돋이를 기다리며 엄마 생각이 났다. 지난했던 엄마와의 사투를 왜 굳이 비행기 안에서 잠도 안 자고 복기하고 있었는지 알 도리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앞으로 한 달 동안 남미 출장길에 올라 엄마가 맘먹을 때마다 전화기를 붙잡고 포핸드 스트록을 날리시지는 못할 것이다. 출장은 곧 엄마와의 공식적인 휴전협정을 의미한다. 즉, 앞으로 추석 연휴가 올 때까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서 결혼 얘기보다 선행되어야 할 얘기들이 많음을 쌍방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사진은 몇 시간 전에 태평양 바다 위에서 찍은 여명의 순간. 비행기 날개에 가려 해돋이 감상은 실패. 

여기는 LAX(Los Angele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