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10년이 걸렸다.
미국 바이어와 거래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팅 후 점심을 먹었다. 우리나라 정서상 밥 한번 먹는 게 뭐가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우리 회사에서 거래하는 북미와 중남미 바이어들의 성향을 나누는 중요한 요소가 밥이다.
중남미 바이어는 보통 아침, 점심, 저녁 식사까지 같이 먹는 경우가 많다. 갑을 관계로 정의를 내리자면 우리 회사가 물건을 팔아야 하는 을의 입장이지만, 멀리 극동 아시아에서 왔다고 극진히 대접을 받는다. 저녁식사에 술까지 한잔하고 호텔로 돌아오면 기진맥진 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미국 바이어는 보통 얄짤없다. 미팅 1시간 하면 바이 끝이다.
그런데 올해는 미국 바이어가 밥을 사줬다?
바이어와 밥 한번 같이 먹었다고 벌써부터 하반기 매출에 청사진을 그려볼 법도 하지 않냐며 회사 내부적으로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해외 영업 경력으로는 40년이 넘으신 사장님도 당신의 사회 경험을 통틀어 미국 바이어와 밥 먹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어리둥절해하셨다.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 거다.
역사적인 미국 바이어와의 점심식사는 메뉴판에 혀가 타들어간다고 쓰여있지만 실상은 매콤하기만 한 네쉬빌 핫소스로 요리한 버펄로 윙과 함께. 대단히 고급 레스토랑에 고급 요리는 아니지만, 눈물의 점심식사 아니겠는가.
식사 후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음에 만나면 골프를 치러가자고 제안을 받았다. 미국 바이어가 뭘 잘 못 먹었나? 생각하다가 골프 안 쳐봤는데 좀 배워서 돌아오겠노라 화답했다. 뒷일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항상 화답은 정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