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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나는 인간인걸.

수호신과의 인터뷰

by 하쿠나마타타

불면증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일줄이야.

여차하면 나의 생각은 다시 과거로 돌아와 해고당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세상 착한 코스프레를 다 하던 그 사장이 온갖 누명을 씌어 회사를 해고한 것, 꿈속에서도 나와 나에게 사과를 한다. 내 감정표면에는 분노가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렇게 최선을 다해 살았던 나의 세상에 대한 분노. 내 생각을 관리하지 않으면 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럼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는 밤마다 한 마디씩 한다 '아니, 지금 생각해 봤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내일 이야기 하자 응?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잠밖에 없거든' 그렇게 최선을 다해 현재로 도망친다.


그럼 뾰족뾰족한 감정의 가시를 들춰낸다. 몸이 점점 뜨겁고 화가 난다. 매일밤 잠드는데만 3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잠들면 좋은데 잠들다 중간에 일어나면 그것만큼 지옥이 따로 없다. 매일 잠드는 게 무섭다.

어느 때와 같이 바디스캔 명상을 몇 바퀴나 돌려도 잠이 오지 않았을 때다. '아이 뭐, 할 수 있는 게 명상밖에 없지' 라며 수식관 명상을 시작했다. 부처님도 숨에 숫자를 붙여서 생각을 없앴다는 아주 간단한 명상이다. 숫자를 붙어서 오랫동안 명상했을 때 나는 다시 내 안의 신과 대화할 수 있었다.


내 안의 신: 그래서? 네가 지킨 게 뭐야?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나: 그래도 건강은 지켰어. 이 고비로 건강과 내 옆에 정말 소중한 사랑이 있다는 걸 알았어. 밑바닥을 그렇게 찍어도 진짜 좋은 사람은 계속 내 옆에 있더라고.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지켜냈어.


내 안의 신: 음. 그럼 네가 우울한 건 그 두 가지를 빼고도 세상에 네가 부정당한 기분이라서 그런 거네? 그럼 이렇게 해볼까? 네가 원하는 걸 다 가졌다 생각해 보자. 돈, 명예, 집 다다. 원하는 거 모두 다.

그런데 사랑과 건강이 없는 삶은 어떨까? 모두를 갖었지만 네가 소중히 생각하는 그 두 가지가 없다고 상상해 보는 거야. 어떨까?


'갑자기 끔찍해졌다. 내가 그 소원하는 걸 모두 갖고 있지만 병이 악화되어 계속 피가 나온다면? 그 괴로운 마음을 혼자 꾹꾹 참으며 견뎌야 한다면? 아무리 세상부자고 아무리 유명해도 이 좋은 걸 공유할 사랑할 사람이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내 안의 신: 그러니까, 부처님도 고행하다가 식중독으로 돌아가셨고,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저마다의 고통이 있는 거라고, 하물며 우린 인간이야. 네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개를 주셨으니 공평한 거 아닐까?


그 대화 이후에 나는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너무 힘든 날엔 내 안의 신이 이렇게 불쑥 나와 도움을 준다.

모두들 저마다의 신이 있다. 그러니 내면을 자주 들여다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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