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묘유 : 텅 비우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 (느껴주면 풀려난다.)
진공묘유,
김상운님의 책 '와칭'에는 그런구절이 나온다. 불교 용어로 공이 되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고.
공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짝을 이루는 한쌍의 무엇이 합쳐지면 공이(텅비는) 되어 사라진다는 뜻이다.
최근 발매한 책 '느껴주면 풀려난다'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적혀있다.
최근의 나는 내가 운영하는 디자인 사업을 정리하고 취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전보다 인구가 3배나 늘어난 호주 멜버른은 취업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포지션 하나를 위해 지원자는 보통 100-200명 정도이다. 그 중에 서류심사라도 통과되서 면접이라도 보는 날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한 안도감이 든다. 적어도 5등안에는 들었다는 소리니까.
어깨 뽕이 올라가는것도 잠시, 면접에서 나는 번번이 떨어졌다.
작게는 스타트업, 크게는 대기업까지 내가 너무 자신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도 매번 실패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영어스킬이 부족한지, 상대방이 원했던 스킬셋업이 안된건지, 한참 구덩이를 파고 바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 아는가? 뭔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과가 잘 나지 않는 그 기분.
거기다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무엇이든(접시닦이라도) 파트타임으로 구하고 싶었는데, '경력자 접시닦이'를 구하는것에 충격을 먹는 이 현실세계를 말이다.
디자인이 아닌 분야에서는 1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소 경쟁이 덜(?) 치열한 디자인업계에서 더 연락이 오면 왔지. 그렇게 3개월, 4개월... 6개월차까지 구직준비를 하게 되었다.(정말 맙소사다)
나의 괴로운 마음을 매일 들여다 봤다. 그리고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처음엔 그 화살을 나의 탓으로 돌렸다.
능력이 없는 나의 탓.
운이 없는 것도 나의 탓.
그러나 점점 이것은 운이 안좋은 상황일 뿐,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부족해'라는 마음가짐에서 온 우주가 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 그대로가 충분함을 알려줬던 지난 10년의 세월 처럼 말이다. 그 마음을 깨닫고 보내주었다. 2주전에 말이다.
그러고 나서 내 삶에 기적같은 일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던지 풍요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먹는 소박한 야채쌈밥이 남들이 먹는 근사한 브런치 보다 훨씬 가득차고 감사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집에 살아도 원하는것을 모두 갖춘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팅룸도 예약할 수 있고, 빌딩네에 수영장도 있다. 햇살이 그득한 큰 미팅룸을 빌려 혼자 조용히 일도 할 수 있다.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만나본 어떤 사람보다 친절하고 사랑의 빛으로 꽉차있는 나의 파트너, 사랑이 뭔지 매일 느끼게 해주는 부드럽고 윤기나는 털을 가진 고양이 키키.
마음이 풍요로움으로 가득찼다.
그 이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인터뷰 하나도 겨우 볼 수 없었던 지난 한달이었는데, 갑자기 6개의 회사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온것이다. '나는 부족해'라는 마음을 보내주고 난게 2주일전 뒤. 나는 어제 합격통보까지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운이라고 하지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6개의 회사에서 일주일동안 인터뷰 제의가 들어오다니.
'부족함'의 짝인 '충분해'가 나의 삶에 온것이다. 그 둘은 짝을 이루어 공이 된다. 즉 영점으로 돌아가서 사라진다.
진공묘유. 공의 상태가 되면 정말로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