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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바구니 Mar 07. 2021

이런 회고록은 언제나 환영이다

<The Back Channel> by Wiiliam J. Burns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원래 즐겨읽는 장르의 책은 아니었다.


문학 작품이 아닌 이상, 사실과 근거, 논리를 탄탄하게 갖춘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1인칭' 관점의 서술은 아무래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고 보기엔 한계가 있으니까. 오히려 저자 위주로 기억을 편집, 왜곡할 위험이 크단 생각에 누군가의 회고록이 나왔다고 하면, 일단 경계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다가 한 2년쯤 전부터 때때로 회고록을 찾아 읽는 습관이 생겼다. 일차적으로는 업무상 필요해서이지만(무슨 업무인지는 나중에 밝힐 기회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실은 회고록의 '유용성'과 '재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할까.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나름대로 깊이있게, 그것도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고자 한다면, 그 일을 직접 해냈거나 가까이에서 관찰한 당사자가 쓴 책 만큼이나 용이한 자료도 없다. 더욱이 자서전 쓰기 문화가 꽤 발달했고, 출판계(물론 아마존의 책 분류에서도)에서도 확고한 분야로 정착한 미국의 전직 관료들이 펴낸 책은 '읽는 경험' 면에서도 만족감을 주는 편이다.


반쯤은 '목적성'을 띠고 읽은 회고록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책이 있으니,

바로 <The Back Channel>. 30년 넘게 미국의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던 Wiiliam J.Burns의 2019년 저작이다.


저자는 냉전 해체 이후 국제질서가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로 재편되던 때부터,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패권이 본격적인 도전을 받고, 또 금융위기와 중국의 부상 '아랍의 봄'과 이란핵합의(JCPOA)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지기까지, 긴 시간 동안 미국 외교 현장을 누볐다. 미국과 세계가 맞닥뜨린 결정적 고비들을 특유의 필력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몇몇 대목은 따로 옮겨 적기도 했다(자료실에서 빌려본 책이기도 했고).


먼저 30년전, George H.W. Bush 행정부 시절을 다룬 책의 초반부. James Baker 국무장관과 Brent Scowcraft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역할을 돌아본 대목인데, 지금의 미국에도 시사점이 있어 보인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는 "지정학이 예측 불허의 극적인 방식으로 지각 변동을 일으("when the tectonic plates of geoplolitics began moving in dramatic and unexpected ways") 때였고, 소련의 '평화적' 해체와 냉전 종식, 이라크 전쟁 등으로 미국의 힘과 역할을 둘러싼 새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Their combination of policy skill and political acument served our country well when the tectonic plates of geopolitics began moving in dramatic and unexpected ways. This was a team that had its inevitable imperfections and blind spots, and its share of misjudgments and disagreements, but as a group they were as steady and sound as any I ever saw. At one of those rare hinge points in history, they were realistic about the potency as well as the limits of American influence. They realized that American dominance could lead to hubris and overreach, but they had a largely affirmative view of how American leadership could shape and manage international currents, if not control them. (p44-45)

‘아버지’ 부시의 외교정책을 사실상 설계했던 이들(Baker, Scowcraft)이 미국이 가진힘의 한계를 인식했고, 그러면서도 미국 리더십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마도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했다는 자신감, 미국의 건국과정 및 그 이후의 ‘짧은’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낙관주의 같은 것이 작용했으리라. 실제로 미국은 한 동안 탈냉전 세계질서를 원하는대로 그렸고, 또 마음껏 주물렀다. ‘미국이 돌아왔다’는 구호를 내건 조 바이든 행정부도 과거와 같은 미국 리더십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다. 아랍권 민주화 시위 확산에 불을 당긴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진퇴' 끌어내는 문제를 놓고 오바마의 다른 참모들과 견해차를 보였던 대목이 나온다. 일부 인사들이 미국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는 '이란 논리를 폈는데, 이에 대해 요르단 주재 대사를 지내면서 중동 정세에 밝았던 Burns 좀더 신중하다. 개인적으로 '옳다 그르다' 도덕적 잣대를 정책 결정 과정에서 들이대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더욱 공감이 됐다.

I was skeptical of the ‘right side of history’ argument, simply beacuase in my own experience in the Middle East, history rarely moved in a straight line. Revolutions were complicated, and most often ended messily, with the best-organized rather than the best-intentioned reaping the immediate gains. (p301)


그리고 이 책이 단지 외교 분야 '참고자료' 로써만이 아니라 책 자체로도 퍽 괜찮았다고 느낀 이유. 군데군데 삶을 관찰하고 또 '성찰'하는 저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국무부 부장관으로서, 백악관이 소집하는 부처별 Deputy(부장관처럼 '부' 직책이 붙은 2인자들) 참모들 회의에 참여한 그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늘상 회의실 뒷편에 앉아있었는데, 사반세기만에 '아 내가 정책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구나'(I had crept up distressingly close to the top of the policy food chain), 라고. '이젠, '어른'이라고, 그러니 잘 해내야겠다'고.


 차례 직장을 옮겨다니긴 했지만 어쨌든 직업인 17년차가 되어가는  역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깨닫곤 하는 일이다.  


책이 출간됐던 2019년, Burns는 '다섯명의 대통령과 열 명의 국무장관'과 함께 일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소개됐다. 이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CIA 국장으로, 여섯번째 대통령을 거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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