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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바구니 Jan 31. 2022

스크린타임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아직까지 '앓이'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집에서 텔레비전 없이 생활한 지 11년째다. OTT 서비스 하나에 가입이 되어있기는 하나, 가족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시청하는 횟수는 두 세달에 한 번 정도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은 10여년 전 멜론이 마지막이었다. 2~3개의 SNS 계정을 여러 필요로 인해 유지하고 있고, 이틀에 한 번은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있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장식하는 것이라고는 주로 시사, 정치 관련 글들, 아니면 미안하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은 페친들의 일상 포스팅 정도다.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최신 대중문화 콘텐츠나 트렌드를 일상적으로, 또 제 때에 접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다. 포털 뉴스는 자주 체크하지만 연예 뉴스는 언젠가부터 열어보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자세히 쓰려고 생각 중이지만 연예인의 근황을 알리는 기사 제목에 아무 상관없는 배우자나 애인의 이름을 하트와 함께 표시한 것을 보면 짜증이 솟구친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화제에 올리는 것이 무엇인지 주워듣는 일이 제법 있지 않았던가 싶은데, 지금은 대면 교류의 범위가 거의 업무와 연관된 쪽으로 한정되고 있으니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니 1년이 훨씬 더 지나고 나서야 '역주행' 신화를 썼다는 한 가수이자 배우 J의 공연 영상을 접한 것도 영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며칠 동안 온갖 영상을 몰아본 후 주변의 가까운 몇몇에게 탐문해봤는데, 여전히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J는 얼마 전 인기리에 막을 내린 사극의 주인공을 맡았다. TV와 연예 뉴스를 보지 않고, '요즘 이게 핫하다'고 말해주는 지인들도 별로 없는 나는 당연히 본방을 보지 않았다. 그날 내가 뭔가를 검색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눈길을 끄는 사진과 큼지막한 텍스트로 편집된 '썸네일'이 맨 상단에 뜨지 않았다면, 아마 앞으로도 나는 J의 출연작을 볼 일도, 그보다 먼저 유행한 역주행 노래를 접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개의 우연이 겹쳐서 나는 그 영상을 보게 됐고, 17년전 사회인이 된 이후부터 단련된 팩트체크와 크로스체크 습관 때문에 서로 다른 버전의 영상을 찾아봤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후기를 수십개 섭렵하는 성격 탓에 영상 밑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을 읽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J의 최신작은 방송사에서 축약, 편집해 유튜브에 올라온 버전으로 보았다. 이미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 잘 하는 아이돌'로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해보고 싶었다. 대체 어떻길래 사람들이 난리가 났을까. 방송사의 편집본 영상은 한 회당 15~20분 내외로 기억한다. 어린시절 드라마 PD와 영화감독을 꿈꿨던 입장에서는 작품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없겠지만, J를 만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드라마를 웬만큼 보고 나니 이제는 J의 옛 예능 출연 영상들이 앞다퉈 유튜브 화면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역주행이 일어난 시기는 마침 군복무 기간이었기 때문에 각 방송사들의 나름의 전략으로 사료됐다. 팬들은 그런 방송사들을 '탑승'했다고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알고리즘의 늪이 시작됐다. 4K 직캠, 라방, Vlog, 제작발표회... 


뭐가 이리도 많을까, 싶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미 그 때는 영상 시청 동기가 팩트체크 때문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간만의 '6인 모임'에서 한 잔 하고 들어와 배부르고 살짝 취한 채로, 야근하고 돌아와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알고리즘에 맡겼다. 




그러고 나서 5일쯤 됐을까. 아이폰 스크린타임 보고서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지난주에 비해 이번 한 주 동안 스크린타임이 OO% 올랐고(숫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 평균 핸드폰 사용 시간은 5시간 15분이었다고. 


주간 리포트보다 더 충격인 것은 일일 리포트였다. 채널 별로 유튜브 몇 분, 애플 운영체계의 웹브라우저 사파리 몇 분 등 사용 시간이 쪼개져서 나왔는데, 차마 이 곳에 쓰고싶지 않다. 


체중계에 올라섰는데 나도 모르게 앞자릿 수가 바뀌었을 때를 확인했던 것만큼의 충격이라고 할까. 하마터면 폰을 화장실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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