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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바구니 Feb 18. 2022

분명 내 음악 취향은 아닌데

노랫말을 따졌던 이가 비트와 춤에 빠져들다

며칠 간 뭔가에 홀린듯이 J의 공연 영상을 찾아보다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원래 즐겨듣던 장르의 음악이 전혀 아닌데도 왜 자꾸 찾아보고, 심지어 혼자 있을 때면 흥얼거리기까지 하고 있을까.


취향이 바뀐 걸까.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 걸까.




1990년대 중반,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한국 대중가요를 자발적으로 찾아 들었다. 그 무렵 한창 심야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글을 끄적이는 재미에 빠졌는데, 팝, 영화음악과 함께 자연스럽게 가요도 접하게 되었다.


가요에 입문한 것은 실은 의식적 노력의 결과였다. (약간 재수없게 들리겠지만) 여전히 클래식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은 했지만, 또래들과 말은 통해야겠다는 필요를 느껴서였다. 유행하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정말 좋다'고 느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또래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아 일부러 좋아하는 척을 했다. 반항심의 발로이기도 했다. 클래식 애호가 부모님에다, 매일 몇 시간씩 악기 연습을 하는 동생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것이 때로는 못 견디게 답답했다.


그러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가요와 뮤지션도 생겼는데, 시작은 전람회 2집이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휴일 아침이면 늘 클래식을 틀어놓으시던 아버지가 내게 선물한 앨범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케스트라 편곡을 많이 가미한 앨범이라서 처음부터 끌렸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전람회 2집을 시작으로 나의 가요 듣기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체계와 방향성을 갖춰갔다. 전람회 2집에서 1집 데뷔앨범으로, 두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신해철로, 신해철과 친분이 두터운 윤상으로, 전람회와 비슷한 이른바 '명문대' 출신 멤버로 화제였던 그룹 패닉으로, 이들 모두가 자주 언급하던 015B와 윤종신 이승환 김현철로, 나아가 그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한 '선배들'인 동물원 김광석 유재하 김현식 조동익 신중현으로... 대중가요를 '열심히' 들었던 이 무렵 3~4년의 시기 동안, 마치 가지치기라도 하듯이 좋아하는 가요와 뮤지션의 리스트를 채워나갔다.


여담이지만 이런 식의 가지치기 패턴은 어떤 작가, 혹은 영화 감독에 빠졌을 때도 반복됐던 것 같다. 먼저 그 작가의 모든 작품,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샅샅이 훑은 다음,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른 작가 또는 감독과 배우의 작품들을 계보까지 그려가며 쭈욱 정리했고, 이어서 그 시대의 작가와 작품들로까지 범위를 넓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취미생활도 영락없는 '범생이'처럼 했구나 싶다.


다시 돌아와서. 당시 내 '최애' 가요들을 아우르는 공통점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고, 그런 일을 감행할 만한 대중음악에 관한 지식도 내게는 없다. 하지만 대략 장르로 치면 광의의 발라드(비트가 잔잔한 편인 록을 포함해서)였고, 뮤지션은 나름 음악성을 공인받은 싱어송라이터였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 또 중시했던 것은 노랫말이었다. 가사를 기준으로 음악을 판단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가사가 와닿으면 한 번만 듣고 말 노래를 두 번, 세 번씩도 들었으니 말이다. 노랫말은 내가 익숙하던 클래식과는 또 다른 대중음악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반면에 J가 속한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 또 J가 다년간 일본에서 솔로 활동을 하며 발표한 노래들은 적어도 내 기준에는 가사가 핵심인 음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두 번 이상 듣는 대중가요는 대체로 가사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었는데, 솔직히 J의 영상을 숱하게 보았지만 가사가 인상적이라고 느낀 노래는 없었다.


대신에 이들의 음악에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 나온 춤과 같은 퍼포먼스, 라이브 무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량, 빠르지만 부담스럽지 않는 비트, K-POP 특유의 '후크'를 의도한 것이 명백해보이는데도 걸려들고 마는 후렴구... 가 있다. 기존의 내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들과는 양극단에 놓여 있지만, 어느덧 나도 모르게 이 모든 것들의 매력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팬덤이 형성된 이유도 조금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J 때문에 새로운 취향에 눈을 떴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그간 새로운 애호의 대상이 생길 때마다 보였던 패턴이 지금은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즐기지 않는다면 같은 노래를 여러 번씩 듣는 수고를 하지 않을 사람이고, 그러니 굳이 취향이냐 아니냐를 결론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찌됐든 익숙한 경로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머무는 것은 신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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