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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Jun 28. 2023

도마소리

아침에 잠을 깨우는 소리는 언제나 엄마의 힘찬 도마 소리였다. 설피 잠을 깨어 감은 눈 사이로 빛을 느끼기도 전에 들려오는 엄마의 도마소리. 마음이 꽉 차는 소리, 설레는 소리. 오늘 아침도 아무 걱정할 것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아홉 살 아이의 아침. 나는 발딱 일어나 맨발로 부엌으로 달려간다.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엄마와 나는 배시시 웃는다. 내가 들어앉아도 남을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는 온 식구가 씻을 물을 데우고, 작은 가마솥에는 밥이 끓고, 연탄아궁이에 올라앉은 은빛 양은 솥에서는 국이 끓는다. 엄마는 혼자서 양쪽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국이며 반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엄마는 땀을 흘린다. 나는 슬며시 물 솥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솔가지를 더 집어넣는다. 엄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     


엄마의 도마소리는 부산하고 거칠지만 힘차다. 엄마는 5남매를 건사해야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까지 아홉 식구에 더부살이를 온 사촌 오빠까지 열 식구의 아침상을 준비하느라 언제나 분주하다. 두 상으로 나누어 안방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엄마가 끓여내는 동탯국이며, 아욱국, 빨간 돼지고기 국은 일품으로 맛있다. 큰 ‘무 석박지’ 김치를 젓가락으로 하나 푹 찔러서 국에 만 밥 한 입, 무김치 한입 번갈아 먹다 보면 어느새 배는 볼록해지고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열 살이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그날도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조심스러운 소리. 씩씩하고 다정한 도마소리가 아니다. 그날부터 아주아주 오랫동안 나는 엄마의 도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도마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매일매일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의 해소 기침 소리와 더듬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 할머니는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다. 할머니의 도마는 겨우 재료를 자를 뿐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더는 신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들려오는 할머니의 부엌 소리는 서러웠다. 엄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침은 쓸쓸하고 빈곤했다.      

79년 석유파동의 여파로 유기농법을 시도하시던 아버지는 농협에 대출을 과도하게 썼고 그걸로도 버틸 수 없자 사채를 쓰셨고 급기야 땅이 다 넘어가고 집이 망해버렸다. 관행농법으로도 식량문제가 해결되지 않던 시대에 유기농법이라니. 앞서도 너무 앞서나가셨던 아버지의 이상이 몰락의 원인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과 나이든 부모님을 남겨두고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나셨다. 그때부터 시작된 어머니, 아버지의 도시 빈민 생활은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중학생이 되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나는 부모님의 부재와 가난으로 버스럭거리는 내면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엄마에게도 자주 가지 않았다. 밑에 동생 둘은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엄마, 아빠를 보러 서울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다 어느 겨울 성탄절이 다가오자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동생들과 함께 엄마를 찾아갔다. 가락동인가 하는 곳에 단칸방에 살고 계셨다. 좁은 방에 옷가지며 이불 가지들이 남루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슴이 매어져 울음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잠시 후 주인아줌마가 주셨다며 엄마가 김장김치 한 포기를 그릇에 담아 오셨다. 그런데 엄마는 그릇을 밑에 놓고 김치를 위로 쭉 들어 올려 가위로 듬성듬성 자르는 것이 아닌가. 볼품없이 온 그릇에 김칫국물을 묻히며 조각조각 떨어지던 김치. 포기김치를 가지런히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과 도마가 김치를 사이에 두고 만들어 내던 소리, 그리하여 기품있게 보시기에 올라앉던 엄마의 김치는 거기 없었다. 엄마의 단칸방에는 도마 하나 올려 둘 부엌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김치를 먹을 수 없었다. 부엌 하나 없이 떠도는 엄마가 가엽고 화가 났다. 그 ‘너불버불’ 떨어져 흩어져있는 김치는 우리 엄마의 김치가 아니었다. 근본 없이 가위로 잘려진 김치는 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그걸 먹으면 나도 그 김치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수십 년이 흐르도록 나는 가위로 대충 잘라놓은 김치를 먹을 수가 없었다. 누가 가위로 김치를 자르는 것을 보면 엄마의 가난이 떠올랐다. 꽃같이 예뻤던 우리 엄마, 우리 오 남매를 위해 파출부를 다니던 우리 엄마. 너무 가난해서 도마를 잊었던 우리 엄마. 가여운 우리 엄마. 나는 살면서 내내 엄마의 도마 소리가 그리웠다.     

  

이제 오십 넷이나 나이를 먹은 나는 매주 일요일이면 엄마가 해주는 점심을 먹는다. 엄마네 집에 가면 아홉 살 적 밥을 하시던 옛날 그 자리에 입식으로 바뀐 부엌에 엄마가 있다. 일흔아홉 살인 엄마는 옛날 그 부엌에서 힘찬 도마소리를 낸다. 엄마가 김치를 한 포기 꺼내 오신다. 두툼한 도마를 꺼내신다. 나는 엄마 옆에 딱 붙어서서 말한다. 

“엄마, 귀찮은데 그냥 가위로 대충 잘라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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