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하지만 집안에만 박혀있기에는 조바심이 처지는 날이다. 제주는 지금 나에게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쳐 부르고 있다. 온갖 꽃들이 망울을 터트리는 봄인 것이다. 들과 마을 사잇길은 아래로는 노랑과 초록 무더기가 가냘픈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유채꽃 무리가, 시선의 위쪽엔 연분홍색 팝콘이 터진 듯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바닷가에는 갯무꽃이 옥색 바다 빛을 바탕 삼아 연보라 안개처럼 어른거리며 피어있다. 가히 몽환적이다.
늦은 오후에 우산을 쓰고 굽이굽이 돌담을 돌아 안 동네로 들어가 집집이 안마당에 피어있는 꽃들을 기웃기웃 구경하고 다녔다. 한참 꽃구경에 취해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옆 동네 삼달리에 사는 첼로 선생님이었다. ‘집에 쑤어놓은 도토리묵이 있으니 저녁으로 묵밥을 해 먹자’ 시며 건너오라 하신다. 묵밥이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여 꽃구경이고 산책이고 다 그만두고 나는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왔다.
3년 묵은 김장김치를 꺼내 ‘쫑쫑’ 썰고 거기에 참기름과 통깨를 듬뿍 넣어 조물조물 무쳐 통에 담았다. 그리고 산책 나가기 전에 돌아오면 바로 먹으려고 밥솥에 앉혀놓고 간 서리태 콩밥을 한 그릇 퍼담았다.
첼로 선생님 댁에는 나의 또 다른 벗인 최 선생님도 와 계셨다. 그녀들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고 자연 밥상을 추구하는 나의 제주 벗들이다. 해가 다 진 저녁에 우리는 함께 묵밥을 만들었다. 일찍 해가 지고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오는 서늘한 저녁. 안에는 난로에 장작이 타고 있었다. 삼달리 첼로 선생님은 미리 멸치에 집에서 기른 표고로 육수를 내두었다. 나는 묵을 굵게 채 썰어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묻혀 둔 김장김치를 얹었다. 수망리 최 선생님은 청양고추와 파를 잘게 썰어 위에 얹고 따끈한 육수를 부었다. 그 틈에 첼로 선생님은 약한 가스 불에 김을 구워서 부순 후 따뜻한 육수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묵 그릇 위에 넉넉히 뿌렸다.
여자 셋이 모여 함께 만든 묵밥. 우리는 난롯가에 둘러앉아 감탄을 연발하며 함께 묵밥을 먹었다. 나탈 나탈 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으며 그 부드러움을 거스르지 않는 찰진 탱글 거림은 국산 도토리로 만든 묵 가루로 묵을 쑤어야만 낼 수 있는 식감이다. 묵 가루와 물의 적당한 비율, 뭉근한 불에 알맞은 빠르기로 쉼 없이 나무주걱을 저어야 눌어붙지 않고 나탈 한 묵이 된다. 너무 일찍 불을 끄면 날 맛이 나고 너무 늦게 불을 끄면 탄 맛이 나서 묵이 가진 순한 맛을 그르친다. 그 순한 묵이 오래 묵은 김장김치를 만나면 오래 사귄 친구 사이처럼 서로의 맛에 스미지 않고 오롯이 자기 맛을 내면서도 각자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아무리 시어 꼬부라진 김치도 묵과 만나면 빛이 난다. 김장김치는 별도로 간을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묵밥의 간을 맞추어주는 역할도 한다. 거기에 톡 쏘는 매운 끝 맛으로 마침표를 찍어주는 청양고추와 은은한 바다향으로 감칠맛을 더해주는 김 가루로 마무리를 한다면 어떤 묵밥도 실패할 수 없다. 우리는 묵밥으로 불룩해진 배를 안고 밤 깊어가는 것도 잊고 수다와 웃음꽃을 피웠다.
어렸을 적, 아직은 남부럽지 않게 부유했던 시절에 성탄절 밤 미사를 마치면 우리 가족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를 했다. 어느 해엔 통닭에 복숭아 맛 샴페인을 마셨던 기억도 있지만, 나의 뇌 깊숙이 남아 있는 기억은 바로 묵밥을 먹던 기억이다. 마당 음침한 곳에 묻어 둔 김장 항아리에서 살얼음이 낀 김장김치를 바가지에 한가득 담아 들고 부엌으로 총총히 들어가던 엄마. 그리고는 이내 따끈한 국물에 담겨 나오던 고소하고 차갑던 묵밥. 차가운 묵과 김치가 따끈한 육수에 담겨 나오면 우리는 언 몸뚱이를 뜨끈한 방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묵으로는 허기를 달래고 따끈한 육수로는 몸을 녹였다. 큰 방에 둘러앉아 묵밥을 먹으며 자정이 훨씬 넘어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던 수다와 웃음. 아직은 세상에 아무 근심이 없던 행복했던 시절.
나는 선생님들과의 묵밥을 먹던 그 밤에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그 아련한 묵밥 생각이 났다. 그 시절 함께 묵밥을 먹던 가족들은 멀리 육지에 있고 이제는 거리만큼이나 서로 사는 모양도, 마음도 멀어진 가족들을 추억하니 마음 한켠이 쓸쓸하다. 하지만 이게 인생이고 순리인 것을. 가족도 가까이 살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어야 가족이다. 멀리 살아 소원해진 관계를 탓해서 무엇하랴. 여기 제주 벗들과 묵밥을 나누어 먹었으니 이제 이들이 내 가족인 것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가까운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가 깊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확장된 의미의 가족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사실은 소원해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묵밥을 먹을 날을 나는 소망한다. 아니 그 본래의 가족들이 너무 그립다. 부정하고 뛰어넘고 싶지만, 도저히 되지 않는 징글징글한 뿌리 의식이다.
# 이른 봄에 썼던 글인데 정신이 사나워서 이제야 손을 봐서 올립니다.
독자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시지요?
저는 그간 궁리했던 귤밭을 샀습니다. 또 좋아하는 북살롱이마고에서 월,금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요.
그러다보니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고 자연히 글도 못쓰게 되었네요.
이제 정신 차리고 쫌 쓰려고 합니다.
많은 격려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