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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Nov 17. 2019

어느 제주 이주민의 혼밥

혼밥은 병맛 2.







늦가을 공기가 상큼하거나 가볍지 않고 축축하고 눅진하다. 육지에는 가을비 치고는 적지 않은 비가 온다는데 제주에도 곧 비가 올 모양이다.     


5시 반이면 온 마을이 벌써 어둠에 잠기고 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이른 밤을 맞는다. 늦은 저녁 시간이 아님에도 저녁밥 준비를 서두르게 되는 이유이다. 시간상 이른 저녁을 먹고 책을 보다가 8시 반이면 어느새 졸고 있다. 제주의 시골에는 밤 생활이 없다.     


9월 말까지 청귤청 작업을 하고 5주간의 휴식 기간을 갖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11월 중순부터는 귤을 따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육지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남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남편과 같이 있는 것은 좋았지만 어수선한 도시의 생활은 내 자리가 아닌 유랑자의 생활처럼 어딘지 모르게 안정적이지 못하고 어느 하나에 마음을 붙이기가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제주집에 내려오니 처음에는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제주집에 내려와 혼자 저녁밥을 먹기 시작한 지 3주째다. 아들이 유학을 하고, 아이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고 난 후, 혼밥에 충분히 익숙한 6년여를 보냈다. 그래서 나름 혼밥에 대한 내공이 쌓여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요즘 먹는 혼밥은 이상하게도 적응이 쉽지 않다. 왜 일까? 오늘 차린 저녁상을 보고 깨달았다. 제주의 생활이 재미있기보다는 이제 외로워졌다는 것을.    




오늘 저녁상은 방풍나물, 고사리나물, 김치찌개였다.     


방풍나물은 봄에 마리아 언니가 밭에서 뜯어다 준 것을 살짝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 둔 것이었다. 언니는 난산리에 밭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방풍나물을 심어 가꾸고 있다. 거기서 봄에 연하고 향기 좋은 방풍 잎을 뜯어다 나를 만날 때면 건네곤 했다. 나와는 열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가 있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로 통하는 것이 많다. 보건소 담을 타고 넘어가 산딸기도 같이 따먹고 시간이 나면 사려니숲길도 같이 걷고 동네의 매오름도 같이 오르곤 했다. 그리고 종교가 같아 성당의 성가대, 레지오 활동도 같이 했다. 이번에 서울에 있다가 내려왔을 때도 오랜만에 같이 점심을 먹고 쌓아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언니는 지금 제주에 없다. 언니는 필리핀에도 집을 두고 추운 겨울이 오면 따뜻한 필리핀에서 생활한다. 우리가 밥을 먹은 날은 언니가 출국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언니랑 헤어지면서 언니가 없는 제주가 나는 좀 쓸쓸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치찌개. 오늘 마음이 헛헛해서 친구인 글로리아의 조언대로 냉동실에 안 먹는 식재료들을 싹 정리했다. 먹을만한 낯선 것들이 꽤 있었다. 북살롱 이마고의 곽샘이 두고 간 것들이었다. 곽샘은 제주에 일 년 살이를 왔다가 내가 자주 가던 이마고에서 근무하던 동화작가다. 우리는 같은 작가로 서로를 격려하고 조언하며 일 년이 넘는 우정을 쌓아갔었다. 그녀가 제주 살이를 일 년 더 연장할 거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다. 당장 헤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그녀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내가 서울에 올라가 있던 10월에 갑자기 제주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밥 먹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짐 정리를 하면서 버리기 아까운 식재료들을 우리 집 냉장고에 넣어두고 갔다. 나는 그것들을 오늘에야 샅샅이 보게 된 것이다. 생선 요리를 좋아했던 그녀답게 싱싱하게 잘 갈무리된 갈치, 고등어가 있었고 찌개용 돼지고기와 베이컨, 그리고 그밖에 소소한 재료들이 있었다. 그 돼지고기와 베이컨에 엄마가 작년에 보내준 김장김치를 넣어 찌개를 끓여 저녁으로 먹었다. 그녀가 곁에 있어서 같이 밥을 먹으면 좋을 텐데. 엄마도 그녀도 그리웠다.    

 

그리고 고사리나물. 올봄에 남편은 휴가를 얻어 제주에 내려와 나와 일주일 동안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다. 길도 없는 깊은 곳에서 덤불들을 헤치고 서로에게 의지하여 고사리를 꺾었다. 서로 보이지 않을 때는 길을 잃을까 걱정되어 서로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곤 했다. 남편은 중학교 시절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인 대학생 오빠였다. 그런 사람이 35년이 지나 내 사람이 되어 덤불 저쪽에서 내 이름은 큰 소리로 부를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 금쪽같은 고사리로 나물을 했다.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그러나 오순도순 함께 먹어야 할 그는 오늘 저녁 식탁에 없다. 나 혼자서 그 고사리를 먹었다.    





혼밥 치고는 나름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 밥상을 차렸다. 그러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운 마당이 내다보이는 식탁에 앉아 갑자기 외로움이 목까지 차오른다. 좋아하는 벗들이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함께 하지 못하는 식사는 아무런 맛이 없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이제껏 맛본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이 온몸으로 스밀 것인데 어떤 준비를 해두어야 덜 쓸쓸할 수 있을까. 혼자 처량하게 밥을 떠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외로운 제주의 생활이 더는 행복하지 않다.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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