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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바꿈 Apr 26. 2024

후딱 가버리는 일요일을 1박2일처럼 즐기는 방법

일출 산행 그리고 산꼭대기 조식

24시간을 20시간으로 바꿔 놓은 게 아닐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같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길이는 천차만별이다. 특히, 만성 월요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월요일을 코앞에 둔 일요일이 쏜살같이 지나갈 것이다. 조물주가 24시간이던 시간을 교묘하게 20시간으로 줄여놓고 24시간인 것처럼 시치미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순 없다. 주중은 어쩔 수 없더라도 주말은 시간을 지배하고 살아보자!  


일출 산행의 찐 맛! 목적지 탐색

우리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최대한 길고 풍부하게 보내는 방법을 찾았다.  군대 시곗바늘보다 일요일 시곗바늘이 더 느리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준비는 금요일 퇴근 시간부터 시작이다.  어차피 금요일 퇴근길은 꽉 막힌 도로다.  퇴근을 서두르기 보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일요일 일출 산행 장소를 물색한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치고 들어가  집에서 2시간 이내 도착 가능한 산을 탐색한다.  2~3개의 산을 정한 다음 블로그를 찾아 후보지를 살핀다.  여행의 찐 맛은 목적지를  찾아보는 재미 아닐까.  재미는 시간을 순삭 시키지만,  이제 퇴근길은 고속도로처럼  펑 뚫 있어  집 도착 시간 차이는 칼퇴근 도착 시간과 크지 않다.  이날 밤 고르고 고른 후보지를 유튜브 영상으로 들여다본다. 아내와 나는 '미우새' 어머니들처럼 패널로 빙의되어 영상 내용에 장단을 맞춘다. 주자창 정보, 산행코스, 화장실 위치 정상 풍광 등을 미리 파악하면서 그 영상 속 산으로 들어갈 설렘 지수를 높인다.  목적지는 대부분 아내가 선택하는데 주로 원점회귀(출발 장소로 다시 돌아오는)도 가능하면서 등산길과는 다른 하산길이 있는 산을 선호한다.  나는 다시 한번 등산 코스를 살펴보고 길 안내가 친절한 블로그를 찾아 스크랩해 둔다.


가성비를 사로잡다 나의 토요일

토요일 일출 산행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아내는 헤어디자이너다.  서비스업 특성상 토요일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요일 산행을 즐긴다.  마음 편한 산행을 위해  토요일 살림은 내가 맡는다.  눈뜨기 무섭게 세탁기와 건조기를 2~3차례 반복하고(빨래 맛집 세 자녀 가정입니다) 건조된 옷을 정리한다. 기계가 열 일하는 동안  커다란 청거북 어항 청소, 세탁소로 가야 할 옷을 맡기거나 찾고, 아이들과 밥을 해 먹은 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오후 2시쯤 된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소파에 앉아 잘 정리된 거실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맛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하지만 이때가 중요하다  뿌듯한 생각에 긴장이 풀리면서 오전 내내 시간을 지배했던 내가 정신줄을 놓는 경우가 많다.  잠시 빈둥거리면 모를까 소파에서 잠들어 버리는 날에는 다시 시간의 노예가 된다.  눈 뜨면 중천에 있던 해는 사라지고 빨갛게 물든 노을이 안녕을 외치고 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우울하게 쳐다보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토요일 밤은 넷플릭스를 꺼두고 저녁 10시 전에 침대로 들어가 눈을 붙인다.


46억 한결같은 태양 앞에 서서

일요일 새벽 3시 알람이 울린다.  일출 산행을 시작한 지 3년 차 들어가는데 신기한 건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잠이 깨고 몸이 대기한다는 것이다.  일요일은 비가 와도 3시면 눈이 떠지는데 인체의 신비가 따로 없다.  아내와 나는 피톤치드 가득한 산에서조차 지긋지긋한 코로나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불편에 맞서 일출 산행을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마스크를 벗어 더지는 일탈행위가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동트기 전 칠흑 같은 산길을 작은 랜턴에 의지하며 오르다 보면 작은 소리 나 풀숲의 움직임에도 머리가 쭈뼛해지는 공포에 싸이기도 했는데 아내에게 태연한 척하려고 애쓰다 보니 웬만한 소리에는 놀라지 않게 됐다.   새벽 산행에 여유가 생기자 길게 뻗은 나무숲 위로 보이는 밤하늘과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치 앞 어둠에 두려웠던 시선을 살짝 들어 올리면 북극성이 밝게 빛나고, 선명하게 보이는 북두칠성을 기본 옵션으로 '저 별은 나의 별' 전갈자리까지 찾아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산 정상에 도착할 무렵, 동이 트기 시작하고 붉은 태양이 숲 사이사이에서 기지개를 켜면 우리의 발걸음은 더 빨라진다.  기어코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다짐으로 오르막을 뛰다시피 오른다.  "뭐지 태양은 나이를 거꾸로 잡수시나? 이토록 한결같은 멋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니"  46억 살 태양의 꾸준함에 감탄을 연발하며 실천보다 계획만 수두룩한 나를 반성했다.


무엇이든 꿀맛으로 바꿔놓은 산꼭대기 마법

찬란한 해를 배경으로 우리는 산꼭대기 조식을 시작한다.  산꼭대기 조식은 아내가 맡는데 삶은 계란을 기본으로 음료는 계절에 따라 뜨거운 보이차 또는 얼음으로 가득 찬 오미자차를 준비한다.  최근에는 콩물 제조기로 만든 검은 콩국 메뉴가 추가됐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 정상에서의 아침 식사는 더 든든하다. 버너 없이 끓여먹는 발열 라면과 발열 밥은 두바이 칠성급 호텔 조식(가본 적은 없지만) 안 부럽다.  굳이 뭔가를 챙겨오지 않아도 집에 굴러다니는 간식이나 먹다 남은 음식을 배낭에 넣은 뒤 산꼭대기에서는 열어보면 꿀맛으로 바뀌는 마법은 등산을 해본 사람이라면 경험해 봤으리라.

** 여름 산행 추천 메뉴 : 복숭아 캔을 얼려 가세요 정상 도착쯤 적당히 녹아있는 살얼음 속 복숭아 맛이 끝장납니다.


이렇게 월요병이 극복된다.

산행 시간은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일출 시간 1시간 30분 전에는 들머리에 도착하려고 노력한다. 정상 도착 시간은 보통 6시에서 8시 사이, 산꼭대기 조식과 정상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신비를 충분히 즐기고 내려오면, 주차장에는 10시 전에 도착한다.  산에서 잘 내려온 다음 샤워를 하고 소파에 발을 뻗고 앉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소중한 일요일 시간은 고작 오후 1시를 가리킨다.  이때 주의할 행동이 낮잠이다.  잠이 오기 전 바로 오후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일요일이 길어진다.  시간을 지배하는 재미를 느끼게 되면 월요병이 자연스럽게 치료되는데 다음 산행 탐색을 오히려 월요일부터 점찍어두면 설레는 마음으로 한주를 견딜 수 있다.  월요병은 설렘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어떤 날 보다 짧게 느껴지는 일요일을 길고 알차게 보내는 방법, 나의 시간 관리법

1. 모험의 시작, 금요일 저녁부터(월요일부터라 면 더욱 좋다. 100대 명산 중 차로 2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산을 탐색한다.

2. 2~3개의 산을 골라 유튜브 영상으로 간접 체험하며, 후보지를 선정한다. 이 과정은 주말의 설렘을 한껏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3. 일요일을 오롯이 즐기려면 집안일을 미리 해둔다.  산에 다녀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니까

4. 집에 굴러다니는 간식이나 먹다 남은 음식을 배낭에 넣어간다.  정상에서 꿀맛으로 바뀌어 있는 마법을 체험한다.

5.  별,태양이 주는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정상아래펼쳐진 머글의 세계를 바라보며 산꼭대기 조식을 즐긴다.

6. 하산하면서 마주치는 등산객들의 수군거림은 못 들은 채 하고  어깨 뽕으로만 집어넣는다. "어머! 벌써 내려오시나 봐!"

7.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시원한 샤워 후, 소파에 앉아 발을 뻗는다. (나는 발받침으로 짐볼을 활용한다)

8. 고작 12시~1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9. 오후에는 가족과 함께 주말의 여유를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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