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면서 수없이 많은 미역국을 먹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날이 있다. 내가 첫 아이를 낳은 날, 첫국밥으로 먹었던 미역국. 나는 그날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경험할 수 없었던 가장 맛있는 미역국을 맛보았다.
누가 그랬다. 아이가 나오려면 ‘악’ 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파야 한다고.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날 낳은 모친은 4킬로그램의 내가 태어났을 때 병원의 온 전등이 다 나간 줄 알았단다. 나를 낳고 한 첫마디가 ‘정전되었어요?’란다. 세상의 빛이 툭 하고 끊겼을 때야 비로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첫 아이를 품고 막달이 가까워오자 어머니의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인터넷 맘 카페에 올라오는 산후 경험담은 어떤 공포영화보다 날 움츠리게 했다. 산통에 대한 공포심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예비엄마에게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과연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부터 ‘별거 아닐 거’라는 억지 위안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 널뛰는 감정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리고 그날 새벽 드디어 진통이 시작되었다. 9시간의 산통 후 나는 3kg의 아이를 순산했다. 아이를 낳고 빚어놓은 듯 너무도 예쁜 아가의 뒤통수가 내 팔에 뉘어졌다. 아가는 머리로 숨을 쉰다고 한다더니 정말 아이의 머리통에서 들숨과 날숨의 맥박이 느껴졌다. 또렷한 눈망울로 날 쳐다보던 첫눈 맞춤은 산통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 입술은 말라 달라붙고 입안은 모래를 씹은 듯 까슬했지만 어쨌거나 아이를 내 안에서 무사히 세상으로 내보냈다.
아이가 신생아실로 가자 긴장이 풀렸다. 온몸의 기운이 손가락 끝에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눈가가 자꾸 흐려지고 졸음이 쏟아졌다. 이상하게도 아이가 나왔으니 몸이 가뿐해야 하는데 더 축 쳐지는 듯했다. 곧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는데 앉아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설핏 잠이 들었을까? 위장을 자극하는 냄새에 눈이 떠졌다. 손주가 태어난 직후 집으로 가셨던 친정어머니가 병원에 미역국과 하얀 쌀밥을 해 오셨다. 사실 난 미역국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미역국은 흔했고 특별할 것도 없는 국이었으니. 딱히 즐기지도 않았고 먹지 못해 아쉬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머니가 보자기를 풀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어머니가 내놓은 미역국은 집 간장만으로 간을 해 삼삼하면서도 감칠맛이 났다. 어떠한 육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장과 참기름 만으로 끓여낸 국이 이러한 맛이 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방금 전까지 앉아 있기도 힘들더니 음식 냄새를 맡자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숟가락을 놀렸다. 큰 대접에 있는 미역국에 쌀밥을 말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어머니는 '새끼 낳느라 고생했다'며 내 등을 두어 번 쓰다듬어 주었다. 투박한 내 어미의 손길을 따라 미역줄기가 흘러갔다.
아이 젖 먹이라고 그랬던 걸까. 아이를 낳은 직후 먹었던 미역국이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오래오래 끓여 부드러운 미역과 갓 지은 하얀 쌀밥이 그렇게 특별한 맛은 아닐진대 말이다. 자녀계획을 끝낸 나는 이제 더 이상 맛볼 수 없지만 영원히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맛이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미역국은 가족 탄생의 그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