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Jun 15. 2020

밥벌이의 곡진함

지하철역 김밥 할머니

  2007년 나의 첫 직장의 연봉은 세전 2880만 원. 사 년 반 동안 내가 다녔던 서울 사립대의 학비는 계절 학기까지 포함 약 3000만 원. 세후야 어찌 됐던 첫 직장 치고 나쁘지 않은 숫자에 나는 겨우, 가까스로 안도했다.

  10대에 내가 꿈꿔 왔던 커리어 우먼은 잘 세공된 얼음 작품 같은 거였다. 어디서든 영롱하게 빛나고 완벽해 보이는 것 말이다.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나고 전문가의 느낌이 살아나는 그런 만듦새를 지니고 있는 얼음 작품. 늘 상쾌하고 싱그러운, 아침이면 여유로운 커피를 마시며 그 날의 메인 뉴스를 훑어보고 오늘 하루도 능력을 인정받는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할 그런 삶을 꿈꿨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어보니 어디 그러한가. 현실은 새벽 6시 30분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넘쳐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지하철 출근길에 올라야 했다. 세전 2880만 원의 연봉을 받기 위해, 나는 밥보다 잠에 양보한 시간에 아침도 먹지 못했다. 아직 뭘 모르던 대학생 시절 지하철 안에서 화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절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나는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아 화장품 파우치 속이 훤히 보이도록 무릎에 올려놓고 눈썹을 그리고 앉아있다.

  입사 초기 난 늘 뭘 몰라 허둥댔고 정해진 시간을 자로 재어 쪼개 쓰느라 먹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서툰 밥벌이를 하느라고 정작 내 밥 챙겨 먹을 기력과 시간이 없었다.

  그 시절 나의 아침식사의 주된 메뉴는 지하철역에서 파는 김밥이었다. 단무지, 햄 당근과 달걀지단만이 들어간 기본 김밥, 한 줄에 1500원짜리 김밥은 바쁜 아침 업무를 보며 커피와 함께 먹기 딱 좋은 메뉴였다. 은박지에 둘둘 말아 파는 할머니 김밥은 간도 알맞고 무엇보다 담백해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새벽이면 지하철역에 나와 김밥을 팔던 할머니, 항상 같은 다라이에 쌓인 김밥은 제법 인기 메뉴였다. 할머니의 기본 김밥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찰지게 지어진 밥은 고소했고 단무지는 늘 아삭했다. 적당히 발라진 참기름은 식욕을 돋우었다.


daum 이미지


  비록 학창 시절 꿈꾸던 우아하고 화려한 커리어 우먼의 아침은 아니었지만 나는 할머니의 김밥을 먹으며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그럴 때면 난 사회 구성원으로 무언가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았던 지하철 역 할머니의 김밥은 나로 하여금 적어도 내 밥벌이는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생각해보면 ‘밥벌이’라는 게 치사스럽고도 구차하지만 가끔은 그 치사함이 너무도 간절할 때가 있다. 비록 아침잠 한번 제대로 못 자고 상사한테 깨지더라도 말이다. 겨우 이거 하려고 16년간 돈 쳐들어가며 학교를 다녔나 싶다가도 이거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는 생활이 안정을 줄 때가 있다. 가성비 최고의 쓸모, 마치 할머니의 김밥 같은 쓸모 말이다.

  지하철 역 할머니의 밥벌이는 ‘김밥’이었을 것이다. 정성을 다해 싼 김밥을 또 다른 밥벌이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팔았다. 어떤 형태로든 내 한 몸 내가 벌어먹고 산다는 게 참 곡진하다. 비록 고귀한 얼음 작품처럼 빛나진 않더라도 말이다. 김밥을 보면 난 무수히 많은 밥벌이들이 생각나 괜시리 콧등이 시큰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쉬게 하는, 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