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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02. 2020

나를 쉬게 하는, 숨

엄마의 매생이국

  첫인상은 이랬다. 초록이지만 검은빛을 머금은 거무튀튀한 진초록, 먹어도 될까 싶은 위험스러운 초록이다. 아주 오래전 시골 할머니 댁 근처 냇강에서 보았던 식물의 모습과 흡사하다. 뿌리가 어디쯤에 내려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찬 물살에도 절대 떨어져 나가지 않았던 선체 식물의 바로 그 모양이다. 엄마가 내 앞에 내놓은 그것은 먹는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진한 생명력이 묻어있다. 머뭇거리는 내게 엄마는 ‘매생이’라 말한다. 엄마의 성화에 나는 크게 한 숟갈 떠 입안에 넣는다. 혀를 감싸는 물컹하고도 미끈거리는 식감에 놀란다. 그리고 뒤이어 생각지도 못한 따뜻하고 달짝지근한 식물의 맛에 연거푸 숟가락을 놀린다. 연하고 향긋한 식물의 표피는 혀를 감싸 돌고 목구멍에 흘러들어 가 내 창자를 쉬게 한다. 타지에서 홀로 온갖 스트레스를 껴안고 자꾸 뾰족해만 가던 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첫인상과 첫맛의 경험이 이토록 달랐던 엄마의 매생이국은 그리하여 서른이 넘은 지금도 어느 곳에 가도 가장 그리운 맛이다.


  매생이는 1년에 딱 한철, 겨울에만 맛볼 수 있다. 설 즈음 식탁에 올라 추운 겨울 얼었던 몸을 노곤노곤 풀어준다. 엄마는 매생이가 나오는 철 꼭 잊지 않고 시장에 가 잔뜩 사다 놓으셨다. 매생이는 손질만 잘하면 소분을 하여 냉동실에 넣어놓고 꽤 오랜 시간 녹여 먹을 수 있다 하셨다. 엄마는 정성 들여 보관해 놓은 매생이를 자식들이 오면 꺼내 굴국도 끓여주고, 매생이 전도 부쳐주셨다. 스무 살이 넘어 엄마와 따로 살게 된 이후부턴 겨울에 본가에 가지 못해도 꼭 한 번은 내가 매생이를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끼고 아껴뒀던 그것을 자식들이 오면 꺼내 놨다 꼭 한 그릇씩 먹여 다시 서울로 올려 보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앉아 내가 타야 할 버스를 기다리며, 이따금 나는 방금 집에서 먹고 나온 매생이가 내 몸 어디쯤 가 있을지 상상했다. 미끈거리며 내 몸 구석구석을 돌고 있을 매생이를 생각하면 온몸이 훈훈해지곤 했다.


사진 출처 ; 농촌진흥청


  대학 졸업반 즈음 취업난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위축된 시간을 보낼 때였다. 겨울방학이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시절 도서관에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도서관 컴퓨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입사원서를 작성하거나 고만고만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는 일이었다. 매일, 매주 수많은 회사에서 사원 모집 공고가 났지만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몇 개 되어 보이지 않았다. 문학이 좋아 선택한 내 전공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던 시기 었다. 남동생은 겨울이 지나면 제대를 할 예정이었다. 동생이 복학하기 전에 내가 졸업을 해야 모두가 수월 할 텐데. 취업도 하기 전에 졸업부터 하면 왠지 낙오자 같은 이상한 공식이 졸업반 사이에 떠다니던 시절이었다. 나의 목표는 오로지 졸업 전에 취업하기. 머리도 마음도, 원서를 쓰느라 타이핑을 치는 내 손가락도 바빴던 그 겨울, 설을 앞뒀지만 나는 본가에 내려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엄마, 아무래도 이번 설 연휴엔 그냥 서울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원서 쓰려면 시간도 없고 해서.”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그렇게 딱 두 마디로 끝난 전화 통화였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난 늘 바쁜 자식이 되어 있었다. 엄마와 통화를 한 후 컴퓨터에 다시 앉았지만 집중이 될 턱이 없었다. 스펙 한 줄 더 적기 위해 방학 내내 쏟아부었던 지난 나의 시간들이 가짜였나 싶었다.


  그 해 설 연휴, 나는 7평 남짓한 자취방과 도서관을 오가며 별 볼일 없는 내 자기소개서가 어떻게 하면 별 볼일 있을지 연구하느라 떡국도 먹지 못했다.


  연휴가 지나고 어느 날 어김없이 도서관에 있을 때였다.


  ‘엄마 지금 서울 올라가. 저녁 집에 와서 먹어. 이따가 보자.’


엄마의 문자다. 나는 엄마의 문자를 보자마자 컴퓨터를 끄고 집으로 달려다. 엄마는 분명 바리바리 내가 먹을 무언가를 싸 오셨을 것이다. 엄마가 도착도 하기 전에 나는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조금 전까지 속이 더부룩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는데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무엇을 가지고 오시는지 모르지만 무엇이든 다 먹어 버리리라 다짐한다. 학교 식당의 들쩍지근하기만 한 밥을 당분간은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몸은 가벼워진다.


    엄마와 마주한 그날 저녁 밥상에는 매생이 떡국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었던 선명한 진초록이다. 보드라운 떡과 매생이는 입안 가득 포만감을 주었다. 우물우물, 나는 쉬지 않고 씹는다. 엄마는 갓 담아 아직도 날이 서있는 배추김치 한쪽을 내게 건넨다. 나도 알지 못했던 서러움과 고단함이 매생이와 배추김치와 함께 내 이에 짓이겨져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막혔던 가슴이 뚫리며 나도 모르게 숨이 토해진다.


  그 밤,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둔 그 겨울에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나의 고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을 말이다. 너무도 익숙해 몰랐지만 나를 숨 쉬게 하는, 그것은 엄마의 음식이었음을 말이다.


  서른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매생이국을 보면. 난 그 밤이 떠오른다.









표지 사진 출처 ; Exhale

RICHARD LEGNER/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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