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어머니는 새롭다. 사실 좋게 표현 해 그렇고 신박하거나 독특하다고 하면 더 알맞다. 내가 결혼 전 가지고 있던 보통의 시어머니의 이미지 하곤 다른 분이다. 시크한 농담 좋아하고 남의 시선에 무심하다. 행동으로 옮기시기 전까진 되도록 말로 내색하지 않으신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갔을 때 나를 앉혀 놓고 하신 말씀 이란 게 살림 못하면 다른 거 하면 되니 신경 쓰지 말라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말이 사람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는데 "내 아들 내가 알지만 오래 연애했어도 같이 살면 답답한 일 많을 거다. 그런데 타고난 거니 어쩔 수 없다. 스트레스받지 마라"였다. 남편과 10년 넘게 살다 보니 어머니가 자신 아들의 어떤 부분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성품으로 결혼 초엔 종종 어머니의 악의 없는 농담에 혼자 끙끙 앓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 땐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이 실수 인가 싶어 방금 뵙고 나온 내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시기도 했다. 그러니까 악의는 없고 냉철한데 좀 어렵다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아직 애기 티 벗지 못한 신혼 때나 이야기지 세월이 장사라고 지금은 어머니의 농담에 맞받아치는 여유까지 생겼다. 가령 어느 집 아버지 칠순 행사로 형제들이 다툼이 난 일화를 전하면서 어머니가 덧붙인 말이 있었는데 "그 집 아들들은 지 아버지가 칠순까지 살아계신 게 행복하지 않은 모양이다"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칠순은 괜찮아요 팔순도 아닌데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냉소적인 말에 답변하는 나만의 농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어머니다 보니 속내를 알기가 까다롭다. 꼭 속내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이 맞은 가족 관계인 며느리 입장에서 속내를 알면 좀 편할 것도 같았다. 결혼 초, 분명 날 좋아하시는 것 같긴 한데 또 이렇다 할 표현은 없으시고, 내가 먼저 연락드리기 전까진 웬만하면 휴대폰 메시지도 보내지 않으신다. 시월드란 말이 유행인 요즘 세상 편할 거 같지만 그건 남편이 바지런할 때 이야기이다. 셀프 효도란 걸 1도 모르고 자기 생일도 내가 말해줘야 하는 남자이다 보니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 어머니가 내가 시댁에 가면 아침마다 새롭게 만들어 주는 반찬이 있었는데 작은 지리멸치로 만든 볶음이었다. 사실 난 멸치 볶음을 좋아한다. 특히 이 지리 멸치볶음을 과자처럼 튀겨 내 만든 반찬을 좋아했는데 친정엄마가 학창 시절 자주 해주던 반찬이었다. 시댁에서 처음 식사를 할 때 내가 멸치로 젓가락이 자주 갔던걸 알아채셨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쨌든 지리 멸치는 상위에 자주 올라왔다. 어머님의 지리 멸치는 바삭하고 고소했다. 먼저 멸치를 잔불에 볶아 수분을 충분히 날린 후에 견과류와 함께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튀기 듯 볶았다. 불을 끄고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넣고 남은 열기로 단맛을 멸치에 입혔는데 밥반찬으로 맞춤이었다. 멸치를 볼 때마다 별생각 없이 먹었고 우리 시댁도 멸치반찬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고슬고슬 볶아진 멸치는 어쨌든 흔한 반찬이었으니.
그 흔한 반찬이 사실은 내가 좋아해서 내가 올 때면 어머님이 특별히 많이 만드셨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시누이가 멸치를 볶고 있던 어머니께 "엄마 멸치볶음을 왜 이렇게 많이 해"라고 물었더란다. 시어머니는 "네 새언니가 좋아해"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결혼 초 어머니를 잘 몰라 서운했던 감정이 어쩌면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결론을 내렸다.
나를 낳아 키워 준 친정엄마도 때론 어떤 마음이실지 모를 때가 많다. 그냥 가벼이 한 농담에 혹시 엄마가 상처 받으신거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하물며 어른이 되어 만난 시어머니가 어렵고 조심스러운 건 당연하다. 처음 어머니를 뵈었을 때 보이지 않는 자기장의 흐름을 느꼈다. 알 수 없는 공기의 흐름은 때론 끌어들이기도 때론 멀어지게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와 어머니에게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켜 주었다. 살면서 이 적당한 거리가 서로에게 유익한 간극이란 걸 알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경험이란 누구에게나 서툴다. 서툰만큼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아니, 완벽할 필요도 없다. 해가 가고 시간의 결이 쌓여가면 어느새 진짜 가족이 되는 법. 멸치를 볶다 나는 멀리 계신 어머니를 떠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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