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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l 13. 2020

모든 어린것은 어여쁘다

  어린것은 어여쁘다. 그중 식물의 돋아난 싹은 순하고 연해 아련한 빛이 눈부시다. 물들의 어린 시절은 봄이나 여름, 계절이 바뀌고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한다. 봄에는 봄동이, 여름에는 고구마순이 밥상에 올라오면 그렇게 또 한 계절을 나고 있음을 안다.


  고구마순은 여름이 제철이다. 길고 통통한 순은 갈색빛을 띤다. 얼핏 보면 고사리처럼 보이지만 고구마순은 단단하다. 반으로 접어 껍질을 벗길 때면 ‘똑 똑’ 경쾌한 소리가 난다. 시장에서 사 온 고구마순을 펼쳐놓고 정신없이 껍질을 벗기다 보면 손톱 아래가 보랏빛으로 물든다. 그렇게 벗긴 순은 고등어나 조기 등 생선 함께 넣어 조려도 맛있고 살짝 데쳐 고소한 들깻가루에 무쳐도 별미다. 고구마순 김치는 오직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것, 갈치속젓이나 새우젓을 넣고 버무린 김치는 아삭아삭 싱그럽다. 뜨거운 여름, 더운 김이 나는 하얀 쌀밥에 막 담근 고구마순 김치를 올려 먹으면 혀끝에서도 땀이 다. 이때 고춧가루는 매울수록 좋다. 식물의 줄기가 맛있다는 것을 나는 고구마순을 먹고 처음 알았다. 7월과 8월 고구마순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문에 여름이면 나는 고구마순으로 만든 음식을 부러 찾는다.


  여차하면 어느새 시기를 놓치는 고구마순이 내 어린아이들, 딱 그 짝이다.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크는 게 아쉽다. 기저귀 갈고 빽빽 울어대던 시절엔 '어서 좀 컸으면, 혼자 숟가락질 좀 잘했으면, 스스로 화장실 볼일 만이라도 봤으면' 했다. 몸은 하나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러대는 통에 '어서어서 자라라' 생각했다. 8살, 5살 여전히 크는 게 직업인 아이들이지만 나는 요즘 아이들이 빨리 커가는 것 같. 불과 2년 전만 해도 둘째가 학교 들어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잠든 밤 예전 사진들을 보면 지나간 시간들이 아깝다. 그땐 육아가 손에 익지 않 힘들어 아이들의 예쁜 시절들을 놓친 것 같다. 어린 생명력을 온몸으로 뿜어대던 제철의 시간들은 어찌나 발랄했던지 사진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라 하루하루 커가는 걸 체감하진 못하지만 새 계절을 맞이할 때 옷장 속 바지를 꺼내 입혀보거나 잠든 아이의 키를 눈짐작으로 재어 보면 깜짝 놀란다. 뒤뜰의 나무가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크고 있음을 느낀다. 그럴 때면 키울 땐 몰랐는데 다 키우고 나니 순식간이었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 난다. 남의 자식은 빨리 큰다더니 내 자식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은 딱 고맘때마다 할 수 있는 이쁜 짓과 미운 짓을 번갈아 하며 크고 있었다. 사는 게 바빠 그걸 미처 모르고 지나친 것일 뿐, 때마다 영글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비슷한 감회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스무 살 초입, 온 가족이 근처 절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우리 가족 앞에는 세 살 정도로 뵈는 어린아이가 까불며 걷느라 정신없었다. 아이 엄마는 행여 아이가 넘어질까 노심초사, 아이는 엄마의 조마조마 한 마음은 아랑곳없이 나들이가 즐거워 발걸음이 가볍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우리 oo도 저때 정말 예뻤었는데 그땐 잘 모르고 지나가 버렸네.


다소 회한(悔恨) 어린 혼잣말이었다.


  지금은 7월 고구마순이 절정이다. 성실한 자연은 때에 맞춰  제철의 식물들을 쏟아낸다. 성실한 시간은 아이들의 무릎에 나이테를 새겨 자라게 한다. 철 지난 고구마순은 일 년이 지나면 또 만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 매 순간 아이들의 한창의 시절들을 나는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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