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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Nov 16. 2024

아버님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undying love


아버님은 오래 아프셨습니다. 브루스 윌리스와 같은 전두측두엽 치매였습니다. 점차 언어기능, 인지능력을 잃어가며 실어증이 오는 치매입니다. 일반적인 치매와는 다르기에 착한 치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점잖게 계시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타인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가족도 초기에는 겉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말수만 줄어들고 다를 것이 크게 없기 때문이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 급격히 진행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표정이 사라지고 인지반응이 느려집니다. 표현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곁에 있는 가족들이 필요한 것을 잘 가늠하고 살펴드려야 합니다. 식사 중에 사레도 왕왕 들리시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드실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마치 아기 돌보듯 식사 후에 등을 쓸어드리며 소화를 도와야 합니다. 화장실도 스스로  힘들어지고, 차를 탈 때 몸을 숙이고 들어가는 것마저 쉽지 않아 집니다. 직진만 하시기 때문에 함께 외출할 때는 손을 잡고 단 몇 초라도 시선을 떼면 안 됩니다. 


내내 손을 잡고 산책을 하시다가 어머니께서 잠깐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는 몇 초 사이에 아버님이 사라지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시고 어디냐는 수없는 물음에 걷고 계신 곳의 지역명을 반복하여 말씀하셨고, 막막한 마음으로 어머니는 주위를 찾아 헤매셨습니다. 다행히 근처에서 아버님의 행동을 유심히 보시고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두리번거리며 전화통화를 하시던 아버님께서 반복하며 말씀하신 지역의 이름대신, 근처의 건물과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걸으실 수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 있어서, 짧은 대답이라도 하실 수 있어서, 등을 쓸어드릴 수 있어서, 소화 잘되는  음식을 만들어 드릴 수 있어서, 아버님의 미소를 볼 수 있어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웃어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만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어지지 않던 대화일지언정 끓어질 순 없었지요. 서로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그립고 죄송한 마음이 사무칩니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만 생각이 납니다. 상주라는 슬픔으로,  아들로서의 회한으로,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측은함으로, 그리고 아빠라는 무게로 짊어지고 있는 켜켜이 쌓인 감정들을 짐작할 수 있을까요.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슬픔을 부부라는 이름으로 그저 함께 나눕니다. 



5학년인 둘째 아이가 의젓하게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모셨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처음을 저도 겪었습니다. 입관식을 앞두고 아이들은 놀랄 수 있으니 데려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만류에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물었더니 당연히 할아버지를 보러 갈 거라고 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함께 입관식에서 수많은 마음의 별들이 쏟아졌습니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모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을 사랑으로 기억합니다. 농축된 진한 사랑이 할아버지에게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 5학년인 둘째 아이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잠을 못 잔 터라 리무진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들고 있는 영정사진은 꼭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장례식에 대한 이해도가 0에 수렴하는 아이를 염려했던 것은 기우였습니다. 아이가 보여준 담대함과 의젓함은 슬픔이 슬픔 속에 갇히지 않고 사랑으로 물들어 가게 하였습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수많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감사함을 표하는 나 자신이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그 누구는 나의  부모가 아니라 남편의 부모이기 때문이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일에 백프로로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나의 감정을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이 저에게 주신 사랑은,  어쩌면 제가 유년기에 받지 못했던 권위적이었던 아빠의 사랑을 대체할 만큼 큰 무엇이었기에 쉼 없이 뜨거운 뭉치가 가슴에서 울컥거렸습니다. 여행 중에 엽서를 쓰셔서 우체국을 들러서 며느리에게  보내셨던 그 다정함의 온기는 시간이 지나도 뜨겁기만 합니다. 서예가 취미이시고 그림을 잘 그리시던, 예술에 뜻깊으셨던 아버님을 닮아 큰 아이도 손재주가 좋고  창작에 재능이 있습니다. 복이 들어온다고 박에 그려주신 새우그림은 여전히 집에 잘 걸어두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결혼할 때 써주신 가훈액자는 본가 3층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손주 손녀들의 sns프로필은 납골당 할아버지의 모습이네요. undying love라고 예담이가 표현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님 좋은 곳에서 마음껏 글을 쓰시고 그림도 그리시며 좋아하시던 약주도 곁들이세요. 그리고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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