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도 괜찮아.

밥을 짓는 마음

by 예담

주로 집밥을 해서 먹는다.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즐거워하는 것도 아니지만, 꿋꿋이 집밥을 한다. 끼니마다 손쉬운 음식을 정성을 들여 어려운 것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다. 갓 만든 따뜻한 음식을 좋아한다. 심지어 멸치볶음도 그때그때 볶아서 따뜻하게 먹는다. 그러니 밑반찬이랄 것도 딱히 필요가 없다. (바쁜 남편은 식사시간을 맞춰서 함께 먹기가 어렵기에, 아이들과 셋이 먹는 날이 많다.)


감자와 두부 넣고 슴슴하게 된장국을 끓이고, 멸치 한주먹에 견과 한봉 뜯어서 볶고, 슉슉 계란 풀어 치즈 계란말이를 해서 한 끼 먹는 식이다.


순두부를 숨덩숨덩 숟가락으로 크게 퍼넣은, 구름 같은 순두부찌개를 곱게 끓이고, 데친 열무에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뿌린 열무 샐러드를 사이드로 내놓고, 얇게 채 썬 감자와 살짝 데친 베이컨을 볶아서 먹는다.

또 어떤 날은, 소고기가 야들야들 해질 때까지 푸욱 끓인 미역국에 손두부를 굽고, 살짝 데친 호두를 볶아서 꿀 한 스푼 넣고 조려서 먹는다.


카레는 가장 만만하고 친근한 메뉴이고, 기름을 따르고 온수 한번 샤악 부어서 낸 담백한 참치에 양배추를 삶아서 내면 아이들이 야무지게 싸 먹는 양배추 쌈밥이 완성이다.

매우 간단하며 건강에도 좋고 엄지도 쌍으로 받았던 마늘 볶음밥은, 마늘을 잘게 다져 기름에 볶아 마늘 기름을 내고 (마늘이 살짝 갈색이 돌 때까지), 그 위에 간장을 살짝 둘러서 간장 향을 낸 뒤 (눌린다는 표현을 썼던가?!) 밥을 넣고 볶으면 끝이다. 마늘을 볶은 뒤, 프라이팬을 기울여 계란을 넣어 슥슥 스크램블을 해서 마늘계란 볶음밥을 해주면 아이들 눈이 더 띠용띠용 반짝였었다.


또 나만의 꼼수? 메뉴가 하나 있다면, 정육점에서 소고기 안심 (이유식용) 얇게 썰어져 있는 안심을 사서 굽는다. 그리고 갓 지은 밥에 참기름과 소금 간을 해서 조물조물 동그랗게 만들어 그 위에 구운 소고기를 올려서 접시에 담아주면 끝. 그러니까 요건 아이들이 라면 먹고 싶다고 할 때 해준다. 라면만 먹기는 그러니까, 라면과 소고기 초밥이면 조금 위안이 된달까. 죄책감이 덜어진달까.


그렇게 한 끼로 만들어 따뜻하게 먹고 치우는 잔반 없는 음식을 선호한다. 예외인 반찬이 있다면, 소고기 장조림! 한번 만들 때 드는 품을 생각하면 조금만 하기 아까워 양이 많아져 버리고, 불고기처럼 한 번에 먹고 치울 반찬이 아니어서 기어이 냉장고 자리를 차지하고야 만다. 냉장고에 들락날락할 수 있는 유일한 vip이다.

워낙 아이들이 좋아해서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버터에 볶아서 주곤 한다. 그래 봤자 최대 3~4일이지만.




따뜻한 음식을 먹을 때 아이들의 표정을 아낀다. 한 숟가락 호호 불어 입에 넣고 맛있다며 웃어줄 때 마음 깊숙이 뜨끈함이 스며든다.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행복이 거기서 나온다. 아이의 입에 따뜻한 음식이 들어간다. 오물오물 씹으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며 꿀떡꿀떡 잘도 먹는다. 얼마 안 남은 국그릇을 기울여 떠먹다 못해 들고 마실 때 왜 나는 감동하는가. 덩달아 뿌듯함을 마시는가.


그래서 집밥을 한다. 뜨끈하고 노곤한 밥을 내어주며 나의 마음도 데운다. 정갈하게 차린 식탁 앞에 앉아 눈을 반짝이며, 맛이 어떠냐 대답을 종용하던 엄마의 음을 실감한다.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집중해서 요리를 하고, 맛있다는 좋은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나면 그간의 노력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 이와 같을까.





밥상머리에서 수저를 들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들었던 (듣고 있는) 말은 "많이 먹어라. 남기지 말고 싹싹 듬뿍듬뿍 먹어." "깨작거리지 말고, 골고루 다 먹어."였다.


애정이 담긴 잔소리는 밥상머리 앞에서 공기를 타고 부유했다. 마 가라앉지도 못하고 바람에 흘러가버리지도 못한 채 음식 냄새와 함께 맴돌았다. 식성이 좋은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잔소리가 될 수도 있으려나 싶지만, 입이 짧고 비위마저 약한 이에게는 더러 부담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 퍼듯, 푸욱 한수저 동그랗게 퍼서 쉴 새 없이 입으로 가져가면 차려준 이의 마음이 더없이 풍요로워질 텐데...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밥을 먹으며 음미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른 만큼 배가 불러오고야 만다.

밥은 아직 남았건만 시간과 비례하여 불러온 배는 더 이상의 숟가락질을 거부한다. 더 먹으라고 권하는 시선을 따갑게 받아내며 몇 숟가락을 더 뜨고, 그만 먹어도 될지 눈치를 본다. 무언의 대답을 받고야 숟가락을 놓는 것이다. 미안함과 함께 맛있다는 말을 연거푸 늘어놓는다. (정말 맛있었는데, 적게 먹었다는 이유로 변명같이 느껴질까 억울하다.)


먹는 양이 적은 내가 그랬다. 충분히 먹었고,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냈음에도 마주 앉은 이에게 "더 먹어라, 이게 다 먹은 거냐, 맛이 별로냐, " 하는 소리를 기어이 듣고야 말았다. 생각해서 하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한 번씩 마음이 뾰족할 때면 괜스레 뾰로통해졌다.


나이 드신 어른의 말씀을 이해한다. 그분들이 사시던 시대에는 먹고사는 것이 삶의 중심이었고, 먹는 것이 귀했던 만큼 끼니 대한 확고한 목적의식이 있었을 테다. 시대가 바뀌고 한층 풍요로워진 음식들의 향연이 앱만 켜도 펼쳐지며, 식사를 놓쳤더라도 대체음식이 풍족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한 끼에 큰 의미를 두고 숙제처럼 가득 먹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조금 덜 담아주면 마음이 더 편해진다. 부족하면 더 담아 먹을 수 있고, 남기지 않게 되니 빈그릇을 보며 뭔가 뿌듯한 마음도 든다.


아이들의 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주지 않는다. 반찬도 마찬가지다. 백 프로가 아닌 80프로 정도로, 여백을 둔 식사다. 그리고 덧붙인다. "맛있게 먹어. 다 먹지 않아도 괜찮아. 먹고 싶은 만큼 기분 좋게 먹어." 그러면 아이들이 오물오물 벌써 밥이 들어간 불룩한 입에 미소를 담으며 "응. 엄마"라고 대답한다.





식사에 부담을 두고 싶지 않다. 더 먹거나 덜 먹는 모든 행위는 스스로 결정한다. 어떤 날은 더 먹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담아준 만큼 먹고 만족하기도 하며, 다른 날은 그마저도 다 먹지 못해 배 부르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간식이 과했던 날도 있을 수 있지.)


열과 성을 다해 따뜻한 음식을 차려주는 것은 내가 하고픈 마음이었으니 내 몫이다. 나머지는 아이들이 채운다. 내가 나머지였을 때, 나도 몫보다 덜했다. 그리고 지금도 엄마 앞에서는 언제나 나머지이다. 재촉하지 않으려 한다. "골고루, 많이, 듬뿍, 푹푹" 다 먹으라고 말하는 대신, 천천히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남겨도 괜찮아. 천천히 먹고 싶은 만큼 맛있게 먹자."


자유롭게 음미하며 식사를 한다. 맛이 별로일 땐 서로 키득거리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선 표정을 숨기지 못해 연신 행복을 흘려댄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깃든 한 끼 앞에서 계산 없이 투명한 기쁨이 감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