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영화 <미나리>는 잔잔한 가운데 흥미진진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이국땅을 배경으로 특별할 거 없는 보통의 날들을 비추는데 상당한 몰임감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 전반에 묻어나는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임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어디에서 살 것인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이런 중요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남편과 점점 지쳐가는 아내, 맞벌이 부부의 육아를 도우러 온 할머니.
영화는 낯설지 않은 가부장적인 모습,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남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멈춰주세요^^)
서로의 구원자이길 바라며 시작한 결혼과 이민생활인데, 십년이 지나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믿고 따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다.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는 아들과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
부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온갖 불행에 절망하고, 각자가 맞다고 생각하는 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그들을 기다린다. 자식에게 신세 지기 미안한 할머니가 불편한 몸으로 집안일을 돕다가 농작물 보관 창고에 불을 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활활 타오르는 창고를 목격하게 되고, 애지중지 키웠던 농작물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 남편은 창고로 뛰어든다. 그런 남편을 돕기 위해 아내도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사람도 아니고 고작 농작물 따위를 구하기 위해 부부가 불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남편에게 농작물이 어떤 의미인지!
남편의 농작물을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드는 아내라니. 그녀에게 남편이 어떤 존재인지, 둘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엔딩이다.
어떤 곳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어떤 불행에도 잘 견디는 가족이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