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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로 Sep 22. 2021

커피, 카피, 코피

다방 레지가 걷는 한 많은 보릿고개 길

"커피에 담겨진 과거 이야기"

커피가 당긴다. 작은 찻잔에 흔들거리는 악마의 검은 눈동자 같은 블랙커피에 빠져드는 순간이다. 고소함을 풍기는 커피의 향기가 세상의 번뇌가 가득한 나의 생각을 빨아들인다. 요즘은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커피가 변신하고 있다. 커피의 변신은 여인의 변신처럼 아름다운 마법이다. 커피 맛의 다양한 마법은 사람들의 감정을 커피 속에 머물게 하면서 마음을 유혹한다. 나는 다방커피의 달콤하고 고소한 느낌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부드러운 입술 같은 커피가 나의 입술에 닿는 그런 느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까? 공식적으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였다. 1895년에 ‘손탁’이라고 불리는 독일계 러시아인 ‘안토니에트 존타크로’부터 커피를 접하게 된 것이다. 120년 전 커피를 사랑한 고종황제와 나는 커피 한 잔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커피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분별하지 않는다. 120년의 시·공간을 잇닿는 커피는 때로는 악마가 되고 때로는 천사가 되어 오늘도 우리들과 함께 한다.  사람과 시·공간을 차별하지 않는 커피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매력적인 중매쟁이다. 커피는 프림을 받아들이고 설탕을 받아들여 사람들의 입을 감동시키면서 검은 악마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궁궐 안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귀한 커피가 궁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손탁’이 1902년 서울에 세워진 정동의 ‘손탁호텔’ 안에 ‘정동 구락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을 열면서부터이다. 당시의 정동 구락부 다방은 조정의 대신들이 외국인들을 만나기 위해 이용했던 장소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자유를 잃고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던 서민들에게 커피는 검은 악마였으리라. 이렇듯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갖고 있는 커피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토해내고 있다. 

     


"다방이라고 읽고 시방새라고 해석한다"


다방은 198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다. 다방에 가면 예쁜 여종업원들이 공짜로 갖다 주는 보리차만 마실 수 없다. 다방커피는 달달하고 고소하여 중독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다방커피를 모방한 대기업의 봉지커피가 탄생했을까. 봉지커피의 원조는 1:2:2를 권하는 다방 레지들이 즐기는 비율이다. 커피 한 스푼에 설탕 두 스푼과 프림 두 스푼을 넣으면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손님 혼자서 커피를 시키면 진한 화장을 한 종업원이 ‘오빠, 나도 한 잔 마셔도 돼요?’하고 묻는다. 다방 여종업원과 함께 마시는 커피는 음흉스럽고 시끄럽다. 다방 레지들이 나도 한잔 사달라고 달려들면 커피 한잔 마시러 갔다가 몇 잔 값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 숫자보다 다방이 많았던 88 올림픽 때, 빚을 지고 다방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근로자가 아니라 노예와 같았다. 근로자들을 위한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은 다방 여종원들을 외면했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은 다방에서 피는 어둠의 꽃을 아름답다는 이유로 꺾었다. 그리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경찰이나 검찰은 어둠의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번지는 노예제도를 알지 못했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공단이나 항구도시 주변의 다방은 술집과 다방을 관리하는 조직폭력배들이 이권을 노리고 있었다.  이곳의 다방들은 커피를 파는 것보다, 여종업원들의 성을 돈벌이에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성 종업원들은 낮에는 ‘티켓’이라는 마케팅을 활용해서 손님들에게 한 시간에 커피의 20배 값을 요구하며 접근한다. 여 종업원의 제안에 손님이 동의하면 한 시간 동안 손님의 원하는 대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농촌이나 어촌 그리고 도시의 공단 근처에서 독버섯처럼 자생했던 티켓다방은 남성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왜 여성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범죄의 표적이 되었을까?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낳은 가부장적인 전통 가족제도는 '남아선호사상'과 '남존여비'라는 괴물을 낳았다. 그 괴물은 확증 편향된 논리로 여성들을 지배했으며, 사회 곳곳에서 여성의 성을 숙주로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몰락의 시작"


당시에는 티켓다방에서 근무하는 여종업원들은 빚을 진 경우가 많았다. 빚을 진 원인은 가족의 병원비, 동생들의 학비, 사기 등으로 돈이 필요한 여성들이 깡패가 운영하는 대부업체에 사채를 빌려서 쓴다. 사채가 무서운 것은 높은 대출이자와 ‘선이자’, ‘꺾기 수법’이다. 처음에 100만 원을 빌리면, 여기서 선이자 10%인 10만 원을 뗀 90만 원을 준다. 기한 내에 100만 원+이자를 갚지 못하면 사채업자는 다시 200만 원을 빌려주는 꺾기 수법을 쓴다. 여기서도 선이자 10%, 20만 원을 뗀다. 그리고 남은 180만 원의 돈에서 1번의 원금+이자를 갚게 한다. 이 금액이 150만 원이라고 할 시 이를 갚고 수중에 들어온 돈은 30만 원이다. 본인이 실제 만진 돈은 처음 90만 원과 두 번째 30만 원을 합쳐 120만 원이지만 갚아야 할 빚은 200만 원으로 늘어나 있다. 여기서 기한 내 200만 원을 갚지 못하면 다시 500만 원을 빌려준다. 여기서도 선이자 10%, 50만 원을 떼고 2번의 원금+이자를 갚게 한다. 처음 백만 원을 빌리면 꺾기 수법과 이자폭탄으로 3개월 만에 열 배로 늘어나게 된다. 

     

‘에이 재수 옴 붙었네!’ 다방에 들어서는 C양이 쟁반에 보온병과 커피잔을 싼 보자기를 주방 앞에 놓고는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C양의 나이는 28세이지만 동료들은 22살로 알고 있다. 이쪽에서는 젊어보일 수록 인기가 좋아서 나이를 줄이는 것이 보통이다. C양은 동안인 데다 키가 작고 몸매가 가냘프다 보니 무척 어려 보이기 때문이다. ‘언니 왜 그래?’ 하며 홀에서 담배 피우던 D양이 묻는다. 여관에서 커피 두 잔을 주문이 들어왔다. 여관이나 개인집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단골이거나 티켓을 원하는 경우가 있어서 빚이 많은 레지가 우선순위이다. 배달을 갔는데 손님이 한 시간 티켓을 끊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니 깎아달라고 사정을 한 것이다. C양은 화가 나서 ‘XXX, 깎을 것이 없어서 시간비를 깎냐!’면서 욕하고 그냥 왔던 것이다. C양은 5살 된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돌싱이다. 4년 전 남편의 폭력과 도박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을 데리고 뛰쳐나왔는데 전세자금이 필요해서 대부업체에 사채를 쓴 것이 화근이었다. 급하게 300만 원을 빌려서 전세방을 구했는데 사채업자의 꺾기 수법으로 인한 이자폭탄으로 빚이 순식간에 이천만 원으로 된 것이다. 결국은 사채업자의 회유와 협박으로 동네 다방으로 팔려오게 된 것이다. 

     

C양의 경우처럼 손님이 진상을 피우는 경우도 있지만, 다방 레지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손님들은 가족처럼 배려를 해주기도 한다. 특히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다방 레지들과 친하게 지낸다. 접대를 해야 하는 사업의 특성 때문에 저녁 술자리에서 여성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낮에 사무실로 손님이 방문하면 다방에 커피를 시켜 원하는 아가씨가 배달하도록 한다. 배달료가 포함되니 않으니 손님이 오면 사무실에서 커피를 시키는 것이다. 사장은 다방 일을 힘들어하거나 근래에 몸이 안 좋은 여종업원이 배달을 오도록 해서 1~2시간 시간을 끊어주고 쉬도록 한다. 다방 레지들의 이런 짧은 시간은 직장인들의 휴일과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누구에게는 소중한 딸이며 누구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었을 그녀들의 다방은 직장이라는 개념보다는 인간시장과 같았다.

     



"밤에 피는 꽃"


다방의 밤은 낮과 사뭇 다르다. 특히 빚을 지고 다방으로 온 여성들은 빚을 갚기 위해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몸을 팔아야 한다. 어두운 밤에 손님이 오면 레지들의 눈은 반짝인다. 운 좋게 호구를 만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저녁식사 후 밤에 혼자서 다방 문을 열면 여종업원들이 생기가 가득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낮에는 지난밤의 유흥으로 지쳐있지만, 밤이 되면 불나방처럼 활기를 되찾는 것이다. 이때 다방 레지는 손님에게 보리차를 갖다 주고 옆에 앉아 노래방이나 2차를 가자고 유혹하며 흥정을 한다. 밤의 외박은 커피 값의 200배 값을 요구한다. 당시 커피 값은 500원이고 자장면이 400원이었다. 직장생활만 하는 순수한 총각들이 한번 기분을 잘못 내면 한 달 생활비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방 레지들은 자유롭게 밤새워 술을 먹으니 아픔을 잊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 호구가 필요했다. 

     

다방에서 일을 하다 보면 별의별 남자들을 만난다. 회사원, 공무원, 판·검사, 백수건달, 깡패, 범죄자, 사업가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이용하는 곳이 다방이다. 남자들의 다양한 직업만큼 다방 여종업원이 된 사연도 다양하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성 사이에는 사랑이 싹트게 된다.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보다 의리와 체계가 있다. 조직폭력배들의 생활 속에서 살다 보니 그들의 습성을 닮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들은 범죄자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는 그녀들은 작은 배려에 감동받고, 작은 배신감에 눈물 흘린다.

      

다방 여종업원들은 우리들의 가족과 같다. 그리고 서비스업종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있는 근로자이다. 그녀들의 불평등한 계약조건이나 근로환경을 개선하지 못하는 정부가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여성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우리 사회를 꽃피우는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우월한 힘의 폭력으로 연약한 여성의 인권을 길들이는 그루밍 범죄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의 돈과 민주주의의 권력이 법을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방의 여종업원들은 자본주의 돈의 채찍으로 온몸의 살이 뜯겨나가는 아픔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녀들이 꿈꾸는 미래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현명한 어머니가 되고 남편에게는 어진 아내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싶은 모두의 소원이기도 하다. 다방에 들이치는 세상의 풍파에 뜯긴 선물 포장지가 애처롭게 굴러다니고 있다. 포장지는 헤졌지만 다이아보다 빛나는 사랑을 품은 그녀들의 선물이 담긴 마음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자본주의의 오만한 편견은 그녀들을 인생의 낙오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오만과 편견은 애초부터 쓰레기였다. 쓰레기가 가득한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다방 레지들의 삶은 부처처럼 자비를 꽃피우는 연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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