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그리워하며
내가 껌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이었던 것 같다. 어릴 적 열 살 위 누나가 소가 여물을 씹듯이 오물오물 거리는 모습이 신기해서 바짝 다가가 "누나 뭐 먹어?" 하고 물으면, 입안에서 갑자기 마술을 부리듯이 하얀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묘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아~~ 해봐"하고는, 하마같이 입을 벌린 내 입속에 이브껌 반 쪽을 넣어 주었다. 처음으로 내 입속으로 들어온 그 감촉..... 달달하면서 묘한 향기가 입안에 퍼지면서 몰랑몰랑 씹히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사탕만 먹던 나에게 껌은 하루종일 씹고도 다음 날까지 씹을 수 있는 기적 같은 제품이었다. 왕사탕 한 개면 10분도 안 걸리게 먹어 치우는데, 껌 반 조각으로 이틀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껌을 씹으면서는 크게 떠들 수가 없다. 입 밖으로 껌이 나갈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뱉어내는 호흡을 조심하는 까닭이다. 늙으면서 목소리가 커진다. 늙으면서 귀가 어두워지니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상대방도 나처럼 잘 안 들릴까 봐 배려하는 차원에서 크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목청을 높이면 입냄새도 비례해서 많이 난다. 잇몸이 늙어서 썩어가는 곳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껌을 씹어주는 것은 어떨까. 껌을 씹으면서 대화를 할 때는 껌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목소리를 마냥 크게 뱉을 수 없어진다.
일반적인 냄새는 것은 처음 맡아보는 것에 민감하다. 꽃 향기 같은 기분 좋은 냄새도 1분이 지나면 냄새의 감각이 무디어지고 평범해진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던 가족들은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져서 냄새에 대한 반응이 밋밋하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다르다. 첫 대면에 대한 호기심은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으면 몸을 깨끗이 하고 외모를 단정하게 해야 한다. 늙을수록 내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은 가족과 나 자신에 대한 배려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당당한 모습이지만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이 사라지고 외모에 자신이 없어진다고 초라해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식당에서 설렁탕을 다 드신 후, 노부부가 서로의 입 주변을 닦아준다.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서 잠깐 씹더니, 젓가락으로 껌을 꺼내서 할머니 입 속으로 넣어준다. 할머니의 입 모양을 보니 틀니를 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잇몸으로 새 껌을 씹기 어려우니 몰랑몰랑하게 녹여서 할머니 입 속으로 넣어 준 것이다. 8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노부부의 얼굴에 설렁탕 보다 더 진한 행복이 가득하다. 노부부의 멋진 외모처럼 사랑도 정말 진국이다.
나도 껌을 주머니에 꼭 넣고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