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그리워하며
젊은 청춘들의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의리와 자존심이다. 청춘들의 의리는 '서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배신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청춘들의 의리는 짠하고 감동적이다. 장구의 신이라 불리는 '박서진'의 청춘 또한 짠하고 감동적이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뱃일을 하면서 부모에게 효도하겠다는 일념으로 장구를 배워서 노래를 하는 모습이 그렇다. 박서진의 의리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미래의 자신과 약속을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젊은 청춘들을 보면 가슴이 짠하고 감동적이다. 어른들이 그들의 열정을 응원하고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옷 잘 입고, 가꾸어도 폼나지 않는다. 할 일 없이 시간을 축내면서 밥 한 끼 먹는 모습도 보기 딱하다. 노인들에게 폼생폼사는 입은 닫고, 귀를 열면서 돈을 잘 쓰는 모습일 것이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꼭 필요한 곳에 적당할 만큼 기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의지하기를 꺼리는 요즘 노인들은 돈을 잘 쓰기보다 잘 모으려고 노력한다. 손주의 용돈을 주면서 자식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속셈이다. 노인들에게 돈은 생활의 수단이나 방법이 되지 못한다. 초등학교 수준으로 떨어지는 인지능력과 사회 변별력(辨別力)으로 돈이 오히려 삶의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죽은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장독 속에서, 헬스기구 밑에서, 장판 밑에서 많은 현금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비바람이 치거나 눈이 내려도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박스를 줍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면 안타깝다. 그들은 돈이 없어서 박스를 줍는 것이 아니고, 박스를 주어야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줍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노란 조끼를 입히고 노인 일자리 창출한다고 도시의 쓰레기를 줍게 일을 시킨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도 있지만 중년의 아주머니도 다수 보인다. 노일들에게 자존감을 줄 수 있는 정책이 과연 없을까. 노인들에게 돈을 주면 과연 삶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존재감이 상실된다는 것에 초라해진다. 일을 할 수 있는데, 손주들을 볼 수 있는데, 자식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는데도 할 일이 없다. 늙으면 쓸모없다는 선입견이 문제다. 오죽하면 늙으면 빨리 죽으라는 말이 있을까.
왜 나이가 들면 쓸모가 없다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업가, 예술가, 정치인 등 사회의 각 분야에서 노인들은 절정의 고수이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젊은이들의 선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 십 년 동안 쌓아온 노인들의 내공은 젊은이들로써는 무림 고수와 같이 존경받을 만한 것이다.
욕심이 문제이다. 욕심을 부리면 한 가지에 성이 차지 않으니 영역을 확장하려 하고 그러다가 관리의 한계를 느껴서 자신의 영역을 잃는 것이다. 편하게 일하려고, 돈을 많이 받으려고, 폼나게 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면서 일을 바꾸고 직장을 옮기다가 늙어버린 것이다. 그 욕심에 자식들과 유대관계를 돈독이 못하고 결국 소통하지 못하니 늙어서 혼자가 되는 것이다. 번 만큼 쓰고, 버는 만큼 만족하면서, 가족들과의 행복을 키우면서 늙었다면 어떨까? 남들보다 더..... 지금보다 더..... 이런 욕심은 불행의 시작이다. 나는 나대로 지금 행복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