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ire Kim Dec 20. 2024

절친이랑 헤어지는 법


절친을 잃은 흔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에겐, 옷을 갈아입다, 언제 다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상처가 거무스름한 흉터가 된 걸 발견할 때가 그렇다. 어쩌면 다쳤을 당시 아프고 성가셔서 회피하고 싶었던 감정들을 무의식 속에서 부정하면서 나는 '상처가 난 적이 없다'라고 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모를 흉터 자국을 무심히 매만지다 보면, 그녀가 떠오를 때가 있다. 학창 시절이 아니라, 머리 다 큰 사회인으로 직장에서 만나 20대 후반과 30대 후반을 오롯이 공유하며 부대끼며 지냈던 친구. 앞 뒤 재지 않고 순수하기 짝이 없던 그녀(나만의 애칭으로 J라 불렀다)는, 수줍음은 많지만 정이 많고 사람을 무진장 좋아하며, 나와 음악, 영화, 음식 모든 부분에서 잘 맞았다. 너무 코드가 잘 맞아서, 전생에 부부관계였을 거라 농담하던 그녀. 며칠 연락이 없다가 불쑥 카톡에 '있잖아..'라고 말을 띄우면, 그다음 말을 뭐라고 할지 이미 느끼고 알고 있었던 그녀.


나는 그녀와 28살 부터 좌충우돌 연애시절과, 결혼과, 임신, 출산을 다 공유했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나의 첫 아이를 첫 조카라며 자신의 친 조카보다 더 신기해하고 예뻐하던 그녀. 엄마인 나도 아무 느낌이 없는데, 첫 애가 학교 갈 생각을 하면 벌써 눈물이 난다며 눈가가 빨개지던 그녀.


남편의 방콕 출장길에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려가면서, 남편 일할 동안 혼자 아이와 있을 감당이 안돼 SOS를 치자, 그 다음 날 휴가 내고 캐리어 가득 내가 좋아하는 맥스봉과 짜파게티등을 잔뜩 넣어 방콕의 호텔 로비에 나타난 그녀. 내가 둘째를 낳고 우울감에 힘들어할 때, 10년 우정 기념으로 홍콩으로 같이 여행을 갔었다. 여행을 가서도 아이 우는 환청이 들려, 새벽 2시, 3시에 깨던 나를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같이 울어주던 그녀.


10주년 우정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그녀는 내가 소개한 분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 가족들끼리도 너무나 잘 알고 지내는 그녀와 멀어지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10년이 넘게 우린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땐 있었지만 결국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지구 끝까지 찾아와서 내 편이 되어 줄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그녀가, 어느 날 내게서 사라져 버렸다.


싸운다거나, 다툰다거나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카톡에 답장이 없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예전부터 한 번씩 동굴에 들어가 외부와 단절된 시간을 갖던 버릇이 있었기에 나는 그녀의 고립된 시간을 존중해 주면서 기다리곤 했다. 그것이 그녀의 우울증 때문이었단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말이다.


카톡에 답장을 안 하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도 서서히 지쳐갔다. 마음으로는 늘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 관계가, 그동안 함께 보낸 시간이 이것밖에 안된단 말인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싶다는 게 그렇게 싫은 일인가...' 밀어드는 서운함에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아야겠다, 주먹을 꼭 쥐고 다짐을 했다.


연락이 끊어진 지 2년이 지났을 때쯤인가,,,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었다. 회사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녀 생각이 많이 났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나를 '잘라내고' 잘 살고 있는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다시 한번 자존심을 누르고 카톡을 보냈다.


"J, 잘 지내는겨? 연락한다더니, 많이 바쁜 거야?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헉, 요새 작두 타는가? 나 사실 아버지 장례식장이야."


2년 만에 연락이 됐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그러고도 나한테 알리지 않은것이 서운했지만 나는 부랴부랴 그녀를 만나러 대구행 KTX를 탔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많이 야위었었다. 그동안 일하며 아이 키우느라 힘들기도 했고 우울증으로 상담도 받는다고 했다. 미안해서 연락을 못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기만 한 시간이 많았다고... 그 와중에도 폭우 속에 대구까지 뭐 하러 왔냐고 안 와도 됐었단 말만 계속하면서 내 속을 긁었다.  'J는 우리 친정아버지 돌아가시면, 마라도라도 올 거 아니야?'란 내 말에 당연히 가야지라고 대꾸하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서 난 더 속이 상했다.


그녀는 장례 치르고 서울 가서 꼭 연락하겠다고, 이번엔 진짜 꼭 연락하겠다며, 기차역으로 나서는 내게 반복해서 말했다. 미안해서 하는 말이란 걸 알기에,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상복 입은 J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역시나 J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힘이 나지 않아 그런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지난 몇 년간 걱정이 되고, 너무나 서운하고, 속이 쓰리고를 반복했다.


그녀와 공유했던 소소한 일상의 길이와 질량만큼, 나에게서 영원히 내 옆에 있어 줄 것 같았던 절친이 사라진 일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지루하고, 잔인했다.


지독하게 열렬히 사랑한 연인과 헤어진 후, 상대와 공유했던 모든 시공간을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지우는 충격만큼이나, 나는 일상의 모든 슬프고 행복하고 따뜻하고 추웠던 순간 속에서 '절친'이 삭제된 채로 혼자 그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혀야 했다.


국물이 유난히 잘 우러난 국의 간을 볼 때, 내가 끓인 차돌된장찌개를 제일 좋아했던 J가 생각났고, 내 아이들이 쓰던 육아용품을 물려받은 J의 딸아이가 얼마나 컸을까, 혈육처럼 마음이 기울던 J의 아기가 생각날 때마다 속이 철렁 철렁했다.


특히나, 남편과 다투거나 긴장관계가 생기면 남편과도 전 직장 동료로 잘 알던 사이인, 남편의 심리를 잘 헤아려주던, 그러나 마지막엔 늘 내편을 들어주던 그녀가 너무나 그리웠다.


나는, 그녀와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디저트 메뉴를 혼자 먹을 때, 내 쓸개에 담석이 가득 있단 진단을 받았을 때, 이석증으로 삶이 마비되었을 때, 그녀를 기억하는 큰 딸이 J의 부재에 대해 물었을 때, J에게 닿지 않을 혼잣말을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연인도 가족도 아닌 '친구'의 부재, 끊어진 관계로 오는 상실과 단절감은 어떻게 '견뎌야' 맞는 것인지, 더 솔직히는 내가 느끼는 이 상실의 무게와 곤혹스러운 감정이 '합당한'것인지 나는 지난 3년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절연'을 견뎠다.


절친과 단절된 스트레스를 다른 상대에게 말하기도 어려운 것은, 그녀를 알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딱히 싸운 것도 아닌, 그녀의 우울감으로 멀어졌다고 얘기하는 것이 껄끄러워서였다. 그녀의 상태를 제삼자가 함부로 판단하고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싫기도 했거니와 그녀를 잘 알던 나의 가족들마저 그렇게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내더니 '왜' 갑자기, 소식이 끊어지게 됐냐고 물으면 나도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뭐라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마치, 내가 잘못해서 망쳐놓은 '일'을 알려줘야 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오래 묵은 상처의 흉터'가 되었다. 나에게 그런 절친이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관계가 끊어짐으로 생기는 상처 따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제 다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상태의 관계로 기억을 지우면서 내 방어기제를 쌓았다.


지난 3년간, J와 나누고 싶었던 모든 좋은 것들, 답답했던 상황 속에서  더 이상 혼잣말을 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주변의 다른 친구를 가까이 두면서 나는 '절친'이 사라진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믿었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고,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니까. '내 인생에 꼬이고 꼬인 실타래 중 풀면 안 되는 것도 있는 거겠지'라며 흉터는 흉터로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다 우연히, NY times에서 "왜 절교는 그렇게나 마음이 아픈 것일까" (Why Friendship Breakups Hurt So Much)란 제목의 칼럼을 보게 되었다.    

미국의 한 심리학 교수가 '절친'이었던 관계가 끝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그의 진단은 휴대폰 화면으로 읽는 칼럼 속 문장이 3D로 튀어나와 보일 정도로 가슴에 콱콱 박혔다.


https://www.nytimes.com/2024/12/07/well/friend-breakup.html?login=smartlock&auth=login-smartlock


무엇보다, 칼럼에 예시로 등장한 다른 이들의 사연은 내가 느꼈던 막막함, 상실감을 마치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증상처럼 동일했다.


Ms. Dullas는 5년간 절친으로 지냈던 친구와 소원해진 경험이 '무례하게 차인' (unceremoniously dumped by some one)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제일 놀랐던 것은,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은 친구를 잃은 것에 애달파하는 게 아니라 그 헤어짐이 얼마나 그녀를 '쓰리게'했는가였다.

"그건, 정말로 정말로, 슬픈 일이에요. 왜냐하면 당신은 잘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것처럼) 애도하는 것이거든요."

("It was just really, really sad because you’re mourning a person who’s still alive")


나는 여기까지 읽고, 고래 뱃속에 갇혀 있는 듯했던 내 마음에 환한 전등이 켜진 느낌이었다.


J가 연락을 끊은 이후,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감정도 바로 그것이었다. 친구와 소원해지는 것이 나의 일상을 이렇게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잠식할 일인가? 나는 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그녀가 '살아 있으나' 나에겐 '죽은 것' 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다시 내가 자존심을 구기고 연락을 해 볼 순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대. 살아 있는데, 죽은 것으로 여기고 견뎌야 하는 상태. 그것이 나에겐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다른 전문가는 절친과 멀어지는 것은 실제로 연인과 헤어지는 것만큼의 힘듦인데 '우정'을 끝내는 과정에는 어떠한 문화적인 지침(cultural script)도 없으며, 칼럼 속 Dr. Fehr는 이렇게 절친과 헤어짐으로 느끼는 슬픔은 '인식되지 않은 종류의 슬픔(unrecognized kind of grief)”이라고 했다. 부모나, 연인 같은 관계의 상실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좌절감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많이 논의 됐지만, '절친'을 잃은 사람들의 당혹스러움은 어디에서도 호소할 데가 없다.


특히나, '절교'는 그 특유의 '모호함'때문에 더 곤혹스럽다. 대부분의 관계는 크게 싸운다든지의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사그라든다. 전화통화가 메시지로만 오고 가고 그 메시지도 간헐적으로 이어지다가 어느 날 희미하게 끝나는... 칼럼에선 The ambuiguity of the slow fade라고 했다. '느리게 사라지는 (관계)의 모호함'. 나 말고도, 그렇게 느리게, 하지만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관계로 일상이 망가졌다는 다른 사례들이 많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칼럼의 전문가는, 'ending'을 너무 공격적으로 또는 직설적으로 마무리 짓지 말라고 했다. 다시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는 여지가 있으니, '요즘 많이 바쁜가 보다. 어떻게 지내? 시간 될 때 연락 줄 수 있어?' 이런 톤의 메시지와 매너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친구를 잃은 슬픔은 '온당한 (합법적) 상실'이란 것을 인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But however you go about severing ties, remember to treat yourself with kindness. “It’s really important to recognize that this is a legitimate loss,” Dr. Fehr said.)


지난 3년간, 나는 10년의 우정을 부정하기에 바빴다. 애초에 없었던 관계라고 전제하면 이후의 상처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기에 내 주변과 머릿속, 마음 속에서 J를 지워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몸 어딘 가에 선명하게 남은 흉터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 그녀의 흔적으로 내가 상실감을 느끼는게 너무나 곤혹스러웠고 수치심을 느꼈다.


여전히 J가 걱정되고, 그녀의 안부가 너무나 궁금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이 상실의 근원이 무엇인지 '원래 이런 것'인지, 이렇게 난감한 감정은 '어디다' 말해야 하는 것인지, 멀쩡히 살아 있는 과거의 절친을 나 혼자 '애도'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나의 흉터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겠다. 시선이 갈 때 마다, 따뜻하게 데운 손으로 흉터를 가만가만 매만지면서 갈비뼈 사이로 매서운 칼바람이 통과하던 그 상실을 인정하고 받아주기로...


"나의 애도는 온당하다.

어디로 보내야할지 막막한 이 감정은 쓰레기가 아니라 친절히 환대하고 받아들여야하는 소중한 상실이다. "


나의 혼잣말은 그렇게 바뀌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