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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Jun 29. 2021

표지로 책을 고른다고요?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표지 이야기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 제일 먼저 무엇을 보시나요? 아무래도 책의 제목을 보고, 그다음에 저자 이름을 보게 되죠. 그런데 여기서 무시할 수 없는 게 책의 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독 표지 그림이 예쁘거나 취향에 맞는 책이 있다면 한 번쯤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림이 예쁘면 그만큼 책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아예 표지 그림을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책을 내용이 아닌 표지로 고르는 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면 결국 표지 그림이라는 게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니, 표지를 기준으로 한 책 선택을 합리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출판사에 원고를 모두 넘긴 뒤 출간을 기다리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것 역시 책의 표지였습니다. 어떤 그림, 어떤 색감이 내 첫 책의 표지가 될지 너무너무 궁금했습니다.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만난 편집자님이 책 표지 후보들을 보자며 태블릿 PC를 켰을 때의 설렘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처음 편집자님이 보여준 그림은 네 개였습니다. 엽서 그림처럼 예쁜 들판의 풍경도 있었고,  인문 서적처럼 담백한 그림도 있었고, 수채화 같은 밭에서 농부가 혼자 일을 하고 있는 그림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처음 끌렸던 건 엽서 그림 같은 예쁜 들판 풍경이었습니다. 일단 그 그림이 제일 예뻐 보였고, 그 한적한 풍경이 책의 분위기와도 맞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의견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보다는 책을 많이 출간해본 출판사 분들의 눈이 더 정확할 테니, 정해주시는 대로 따르겠다며 편집자님께 떠넘겨 버렸죠.

 그런데 며칠 뒤 편집자님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최종 후보로 두 개가 올라갔는데, 회의 참가자들의 의견이 딱 둘로 갈라져서 팽팽하게 맞서 있다며, 저의 의견은 어떠냐는 거였습니다. 최종 후보로 올라간 그림은 인문학 서적 같은 담백한 그림과 수채화 같은 농부의 그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마음에 들었던 엽서 같은 그림은 아예 결승에 오르지도 못하고 예선전에서 탈락해 버렸더군요. 그런 그림은 예쁘긴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책들이 비슷한 그림을  표지로 써서 개성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역시 전문가의 눈이란!)

 결승전에 오른 그림 두 개를 다시 한 번 꼼꼼히 뜯어봤습니다. 인문학 서적 같은 그림은 한 남자의 세 가지 모습이 실루엣처럼 담겨 있었습니다. 각각 책을 보거나, 일을 하거나, 잠시 쉬는 듯한 직장인의 다양한 모습이 표현돼 있었는데요. 바쁘게 사는 직장인의 모습이 저와 닮은 것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다른 수채화 같은 그림을 보니 보랏빛 꽃들과 초록빛 잎새들이 만발해 있는 곳에서 한 농부가 일하고 있는 옆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옆모습이 좋았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밭을 갈며 내일을 기다리는 농부의 옆모습. 그것이 일로 인해 고된 느낌이라기보다는 일을 하며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위에 얹어진 한 문장이 마음에 울림을 줬습니다. 


 “쉽게 얻은 사람은 모르는 일의 기쁨에 관하여”


 저는 사람의 앞모습보다 옆모습이나 뒷모습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 할머니의 굽은 등, 먼 하늘을 바라보는 청년의 시선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곤 하죠. 그 그림 속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농부의 옆모습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내일을 기다릴 줄 아는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그 그림이 책의 표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책 표지를 인쇄하는 날 편집자님은 아침부터 마음을 졸였습니다. 표지 그림을 인쇄할 때는 기사님이 직접 잉크를 섞어서 색깔을 만들어 내는데, 기사님에 따라 선호하는 잉크의 농도가 다르고, 잉크 배합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거였습니다. 다행히 인쇄된 첫 표지를 본 편집자님은 딱 원하던 느낌대로 색깔이 나왔다며 기뻐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뒤 표지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일단 예쁘다는 평이 가장 많았습니다. 민트색 배경에 연보랏빛 들판의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거였죠. 거기에 작게 그려진 한 농부의 모습을 집어내며 책의 주제를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신 분도 많았습니다. 표지 때문에 책을 집어 들었다는 분들도 많으니 표지가 잘 만들어진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책의 표지 하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니, 요즘에는 서점에 가면 많은 책들의 표지 하나하나에 더 눈길이 갑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의 멋진 표지 그림을 그려주신 그림 작가님과 최적의 색감을 뽑아내 주신 기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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