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의 이상한 띠지
서점에 가서 책들을 보면 보통 표지에 4분의 1 크기 정도로 싸져있는 종이가 있죠. 그걸 띠지라고 하는데, 주로 책의 홍보를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내용도 눈길을 확 사로잡는 문구가 많죠. 가장 기본적인 게 저자를 홍보하는 겁니다.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를 크게 적는 경우가 많아요. 또, 어떤 유명한 셀럽이 추천한 책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있고, 책 자체를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포장해 독자들의 기대를 키우기도 합니다.
이에 비하면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의 띠지는 매우 소소합니다. 일단 저자 홍보는커녕 저자의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죠. 또 어떤 유명한 사람이 추천한다는 말도 없습니다. 심지어 책이 대단한 내용이라는 홍보성 문장조차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시적인 문장 두 개가 있을 뿐이에요.
일반적인 출판 문법으로 보자면 좀 말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님들이 올려주신 리뷰들 중에는 유독 이 띠지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띠지에 적힌 저 두 문장이 큰 위로를 주었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이 띠지의 문구는 저희 편집자님이 써주셨습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 두 문장 속에 완벽하게 담았죠. 그 평범해 보이는 두 문장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하니, 저는 매우 성공한 띠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소영 편집자님 고마워요!^^)
그런데 이 띠지의 내용이 결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처음 잡았던 초안은 저자인 저를 엄청 멋진 사람으로 포장해주신 거였습니다. 이메일로 초안을 받아본 저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저를 멋있게 표현해주신 건 너무나 감사하지만, 평소에 제가 그렇게 멋지거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니와, 이 책의 내용이 사람들에게 성공하라거나, 멋지게 되라는 내용이 아니었으니까요. 당황한 저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띠지 문구를 다 빼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도 출판사에서는 제 뜻을 이해해 주셨고, 해당 내용을 모두 삭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홍보문구를 다 빼고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홍보 내용을 다 뺄 거면 띠지를 왜 만드나?’ 하는 거죠. 홍보하자고 만드는 게 띠지인데, 정작 홍보문구는 다 빼버렸으니 말입니다. 며칠 뒤 출판사에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역시나 같은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정리된 게 매우 담백하고 간단하게 저에 대한 소개를 넣자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 정도도 하지 않으면 띠지의 존재 의미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띠지가 인쇄를 들어가는 날 다시 한번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편집자님이 급히 전화를 걸어 주셨는데요. 막상 정해진 대로 띠지를 만들어서 책에 얹어 보니, 그것조차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어울리지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논의 끝에 띠지에 저자 이름을 포함한 홍보성 문구를 모두 빼고 책의 진정성만을 담자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결국 띠지에는 넓은 여백 속에 편집자님이 써준 시적인 문구 두 개만 들어갔습니다.
어떤 독자 분이 리뷰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평소에 책을 읽을 때는 제일 먼저 띠지를 벗겨내고 읽는데, 이 책은 띠지와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것 같아서 끝까지 불편함을 감수하며 띠지를 함께 싸서 읽었다고요.
지인 중에는 이 책의 띠지를 보고 제게 ‘홍보를 포기한 거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화려한 내용으로 가득 찬 다른 책들의 띠지에 비해 너무 소소하고 썰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소박하지만 담담한 띠지야 말로 어느 띠지보다 효과적인 홍보문구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좀 느리더라도 진정성 있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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