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내 친구나 지인을 만나게 되면 습관적으로 하시는 인사말이 있었다.
“축하한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무언가를 축하해주는 듯 환한 얼굴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축하를 해줬다. 그러면 상대는 대부분 크게 당황했다. 딱히 축하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다른 사람한테 해야 할 축하의 인사말을 착각해서 하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차마 “저 축하받을 일 없는데요?”라고 하기는 민망하니 대부분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분명한 건 그게 아버지가 상대를 착각해서 하신 인사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누구를 따져가며 그 인사말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리지 않고 그렇게 인사를 하셨으니 딱히 축하해줄 일이 있어서 한 얘기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한 인사치레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더구나 아버지는 평소 나에게도 축하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에도, 출장 갔다 돌아왔을 때에도, 그리고 휴가 기간에 여행을 다녀왔을 때에도 내 얼굴을 보면 입버릇처럼 축하한다는 말을 하셨기에 나에게 그건 “밥은 먹었어?”와 같은 일상적인 인사말이었다.
하지만 그걸 인사말로 처음 들은 지인들은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나 역시 아버지가 상황에 맞지 않는 인사말을 하시는 것 같아 부끄럽고 무안해서 서둘러 그들을 아버지가 안 계신 자리로 안내하곤 했다. 그러고 나면 생뚱맞게 축하를 받은 당사자들은 항상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한테 뭘 축하하신다는 거야?”
그러면 나도 장난기가 발동해서 말했다.
“잘 생각해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거 아냐?”
신기한 건 그렇게 해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면 누구나 축하받을 만한 일이 하나쯤은 다 있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오랫동안 공들여 해왔던 어떤 일이 잘 풀렸든, 가족 중에 누군가 바라던 좋은 일이 생겼든, 그런 것도 없으면 하다못해 최근에 갖고 싶었던 물건을 하나 샀든, 아니면 며칠을 앓던 감기가 나았든, 뭐라도, 일상의 어떤 작은 거 하나라도 축하받을 일이 하나쯤은 있었다. 물론 그 일을 아버지가 알고서 축하하시지는 않았겠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혹은 쌓여가는 고민들에 치여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무심코 흘려보내던 일상의 좋은 일을 찾아 떠올리는 건 분명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건 뜬금없이 듣게 된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가 가져온 행복이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좋은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만큼 마음을 나누는 일은 없다. ‘어려울 때 곁에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도 맞겠지만 반대로 ‘좋은 일이 있을 때 곁에서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친구’ 만큼 소중한 사람도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좋은 일에 가장 먼저 피어오르는 감정이 질투심이나 시기심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이라면 얼마나 순수하게 상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겠는가. 그건 진심으로 상대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는 축하받을 일이 잘 없다. 누구나 알 정도로 크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나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게 되는데, 그런 일이 어디 자주 일어나겠는가. 예전 같으면 수시로 축하받았을 일상의 좋은 일들을 무심코 흘려보내게 되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별 것 아닌 일도 누군가로부터 축하를 받는 순간 그건 별 것이 된다. 그 좋은 축하, 이제 나라도 사람들에게 자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거칠고 까칠한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충분히 축하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따뜻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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