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카카오톡이 ‘보낸 메시지 삭제 기능’을 도입한다고 발표했을 때 진심으로 반가웠다. 주변에서 실수로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잘못 보내 당황하거나, 그 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른 경우를 여러 번 봤고, 나 역시 메시지를 잘못 보내거나, 잘못 온 메시지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삭제 기능이 도입된 이후에도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상대가 읽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고, 삭제할 수 있는 시간도 보낸 시점으로부터 5분 이내로 제한돼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삭제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카톡에 ‘보낸 메시지 삭제 기능’이 도입되기 몇 년 전, 직장 동료 한 명이 취재를 다녀오던 차속에서 그의 친한 동료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걸 선배에게 잘못 보냈다. 안타깝게도 메시지는 바로 그 선배를 적나라하게 욕하는 내용이었다. 차마 그대로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욕이 포함된 내용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메시지를 잘못 보낸 그 순간, 그 선배는 차 안에 같이 있었고,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날 두 사람은 함께 취재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후배 입장에서 그 선배 때문에 꽤나 마음고생을 했나 보다. 돌아오면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친한 동료에게라도 풀려고 메시지를 보낸다는 게, 선배로 인해 불안정해진 심리 상태 때문이었는지 전송 상대의 이름에 그 선배 이름을 넣어버린 거였다.
공교롭게도 그 선배는 메시지가 오자마자 확인을 하고 말았다. 조용히 차 속에 앉아있던 선배는 휴대폰을 보자마자 갑자기 ‘읍’하는 짧은소리와 함께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고, 새빨개진 얼굴로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다는 게 당시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목격자의 진술이다. 메시지를 잘못 보낸 후배는 아마 보내자마자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 후 선배의 침묵 속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이미 메시지로 할 말 못 할 말 다 해놓은 상황에서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아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가시방석 위에 앉아있었을 것이다. 메시지를 받은 선배는 왜 한동안 침묵을 지켰을까. 아마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보낸 사람도, 받은 사람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무거운 침묵 속에 차는 계속해서 회사를 향해 달려갔고,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고민을 끝낸 선배가 후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누가 내 뒤에서 욕한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이렇게 앞에서 욕하는 건 처음 겪어본다.”
다행히 이후에 그 선배와 후배의 사이는 더 좋아졌다고 한다. 그 선배는 평소 후배들한테 깐깐하기로 유명한 선배였는데, 어쩌면 잘못 보낸 메시지 하나로 인해 후배의 의도하지 않은 직언(直言)을 듣게 된 뒤,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이렇게 개인에게 메시지를 잘못 보낸 건 그래도 나은 편이다. 모 언론사의 남기자 한 명은 회사의 부서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를 잘못 전송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해외 출장 중 어느 날 밤 자기 전에 사진 한 장을 단체 카톡방에 잘못 올렸는데, 그 사진은 본인이 알몸에 주요 부위만 수건으로 살짝 가린 사진이었다. 당시는 카톡에 아직 ‘보낸 메시지 삭제 기능’이 도입되기 전이었으니, 전송 버튼을 누른 순간 상황은 끝이었다. 일이 잘못된 걸 파악했을 때 이미 해결 방법은 없었다.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의 사진은 부서 단체방에 속절없이 그대로 전시돼 있었고, 삽시간에 여직원들을 포함해 선배부터 후배까지 모두 원치 않은 중년 남성의 누드를 감상했다. 온 부서가 얼마나 난리가 났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나마 주요 부위를 가린 사진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수건이 사진 찍는 순간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벌어졌을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해당 기자는 깊은 사과와 함께 집에 있는 부인에게 보내려던 사진을 잘못 보낸 거라고 해명했고, 결국 이 날의 해프닝은 이 기자의 금슬 좋은 부부관계를 확인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잘못 보낸 메시지 하나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한다. 평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기로 유명한 여기자가 셋째 아이를 얻게 된 남자 선배 소식을 듣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이제 정말 다둥이 아빠가 되셨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런데 뜻밖의 답장이 돌아왔다.
“저 총각인데....... T.T”
전화번호를 착각해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메시지를 잘못 보낸 거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장을 확인한 기자는 선배의 셋째 출산을 축하하려다 전화번호를 착각했다며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다시 답장이 돌아왔다.
“와, 그분은 참 좋겠어요. 저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전해주세요.^^”
답장을 받은 기자는 다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낸 뒤, 옆 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 메시지들을 보여주었다. 잘못 온 메시지를 그냥 무시해서 지나치지 않고 성의 있게 답장을 보내준 이름 모를 그의 정성에 기자의 얼굴에서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옆에서 두 사람의 메시지를 지켜보기만 한 나조차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나도 어쩌다 누군가의 잘못 보낸 메시지를 받게 되면 성의 있게 기분 좋은 답장을 보내려 노력했다. 그러면 상대방도 다시 기분 좋은 메시지를 보내주었고, 그렇게 모르는 사람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갖곤 했다.
요즘은 카톡에서 메시지를 잘못 보내는 게 옛날만큼 두렵지는 않다. 빨리 실수를 인지해서 상대가 읽기 전에 재빨리 삭제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아예 삭제의 흔적조차 없애주지 않고,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라는 흔적만큼은 고이 남겨두는 카카오톡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게 남겨둔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게 되면 이제는 사라져 버린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이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상대가 지우기 전에 확인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메시지를 잘못 보낸 당사자가 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 새로운 기능이 생긴 게 참 다행이지만, 한 번의 클릭으로 실수를 지워버릴 수 있는 기술이 현실의 삶과는 너무 달라서 좀 비인간적이고 메마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술의 진보가 반갑기는 하지만, 사람의 실수가 주던 낭만이 살짝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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