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속담이 나올 때가 있다. 속담이라는 것이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응축된 삶의 지혜이다 보니. 상황에 맞는 적절한 속담은 대화를 더 부드럽게 해주는 양념이 되기도 하고, 논쟁의 자리에서는 상대의 기를 꺾는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같은 속담은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삶의 지침이 돼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고마운 속담이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삶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고, 사람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으며, 어디에나 예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음에도, 마치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만능키처럼 무차별적으로 들이대는 속담 하나가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생사람 잡는 공포의 속담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이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있을 수 없다’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속담이 가장 많이 쓰이는 경우는 누군가에 대한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돌 때이다. 소문의 내용이 맞는 것 같은데 근거는 없을 때, 즉,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을 때 당사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이 속담이 나오는 순간 소문에 대해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조차 고개를 끄덕이며 소문 신뢰자의 대열에 합류해 버린다. 상황이 이쯤 되면 더 이상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소문은 기정사실이 돼버리고, 당사자의 해명은 오히려 소문을 더 부추기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를 않는다. 이런 소문들의 경우 대부분 당사자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쁜 내용들이다. 증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실물로 존재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당사자는 억울함에 잠도 못 이룬다. 심하면 불면증과 우울증, 대인기피증에 걸려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오기도 한다. 억울한 소문으로 고통을 겪다 끝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 많은 연예인들이 끝까지 힘들어했던 건 바로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을 것’이라는 대중의 인식이었다. 함부로 쓰이는 속담 하나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속담은 그 자체로 모순이 있다. 굴뚝에서 아무것도 때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연기를 담아와 밑에서 풀어버리면 굴뚝에서는 연기가 날 수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있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심지어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들이 진짜 뉴스의 탈을 쓴 채 아무런 검증 없이 유통되고 있는 요즘, 가짜 뉴스를 더욱 부추기는 이 속담은 그 쓰임을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생사람 잡는 또 다른 공포의 속담이 ‘핑계 없는 무덤 없다’이다. 이 속담은 보통 뭔가 일이 잘못됐을 때 그 결과를 낸 당사자가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면 등장한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이 속담의 가장 큰 문제는 ‘핑계’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핑계’라는 단어를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핑계]
1.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2.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
사실을 감추고,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것이 ‘핑계’이다. 한 마디로 그 안에는 ‘진실되지 못한 거짓된 말’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가 꼭 해야 할 말을 하는 순간에도, 이 속담이 나오면 ‘필요한 해명’이 순식간에 ‘구차한 변명’이 돼버린다. 그때부터 당사자는 입을 열면 열수록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 돼버리니 결국 억울해도 꾹 참고 입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순간 일이 잘못된 책임은 온전히 그 사람 개인의 것이 돼버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상당수의 문제들은 개인의 잘못 뒤에 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정확한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 버리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진다. 좀 심하게 말하면 속담이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생사람 잡는 속담이 두 개 있다. 아예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속담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두 속담의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졸지에 가해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강한 폭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앞서 말했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가 당사자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다면 이건 아예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진짜 방귀 안 뀐 사람이 뀌었다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속담들대로라면 이런 경우에 화를 내면 그건 억울해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찔리니까 화를 낸 게 돼버린다. 이런 상황이 억울해서 더 화를 내면 진짜 방귀 뀐 게 확실한 거다. 도둑 누명 쓴 게 억울해서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면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하니 당사자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온 몸으로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이미 빠져버린 선입견의 늪 속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 들어간다.
이렇게 생사람 잡는 속담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도무지 당사자의 말을 귀담아듣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의 얘기를 충분히 들은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말문을 막아버린다. 억울한 피해자의 발생 가능성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수가 그렇거나,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모두가 그럴 거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폭력이 존재한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속담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속담 하나도 함부로 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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