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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Sep 30. 2020

생사람 잡는 공포의 속담 4가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속담이 나올 때가 있다. 속담이라는 것이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응축된 삶의 지혜이다 보니. 상황에 맞는 적절한 속담은 대화를 더 부드럽게 해주는 양념이 되기도 하고, 논쟁의 자리에서는 상대의 기를 꺾는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같은 속담은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삶의 지침이 돼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고마운 속담이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삶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고, 사람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으며, 어디에나 예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음에도, 마치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만능키처럼 무차별적으로 들이대는 속담 하나가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생사람 잡는 공포의 속담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이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있을 수 없다’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속담이 가장 많이 쓰이는 경우는 누군가에 대한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돌 때이다. 소문의 내용이 맞는 것 같은데 근거는 없을 때, 즉,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을 때 당사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이 속담이 나오는 순간 소문에 대해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조차 고개를 끄덕이며 소문 신뢰자의 대열에 합류해 버린다. 상황이 이쯤 되면 더 이상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 하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소문은 기정사실이 돼버리고, 당사자의 해명은 오히려 소문을 더 부추기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를 않는다. 이런 소문들의 경우 대부분 당사자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쁜 내용들이다. 증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실물로 존재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당사자는 억울함에 잠도 못 이룬다. 심하면 불면증과 우울증, 대인기피증에 걸려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오기도 한다. 억울한 소문으로 고통을 겪다 끝내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 많은 연예인들이 끝까지 힘들어했던 건 바로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을 것’이라는 대중의 인식이었다. 함부로 쓰이는 속담 하나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속담은 그 자체로 모순이 있다. 굴뚝에서 아무것도 때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연기를 담아와 밑에서 풀어버리면 굴뚝에서는 연기가 날 수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있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심지어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들이 진짜 뉴스의 탈을 쓴 채 아무런 검증 없이 유통되고 있는 요즘, 가짜 뉴스를 더욱 부추기는 이 속담은 그 쓰임을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생사람 잡는 또 다른 공포의 속담이 ‘핑계 없는 무덤 없다’이다. 이 속담은 보통 뭔가 일이 잘못됐을 때 그 결과를 낸 당사자가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면 등장한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이 속담의 가장 큰 문제는 ‘핑계’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핑계’라는 단어를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핑계]


1.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2.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


 사실을 감추고,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것이 ‘핑계’이다. 한 마디로 그 안에는 ‘진실되지 못한 거짓된 말’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가 꼭 해야 할 말을 하는 순간에도, 이 속담이 나오면 ‘필요한 해명’이 순식간에 ‘구차한 변명’이 돼버린다. 그때부터 당사자는 입을 열면 열수록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 돼버리니 결국 억울해도 꾹 참고 입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순간 일이 잘못된 책임은 온전히 그 사람 개인의 것이 돼버린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상당수의 문제들은 개인의 잘못 뒤에 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정확한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 버리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진다. 좀 심하게 말하면 속담이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생사람 잡는 속담이 두 개 있다. 아예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속담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두 속담의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졸지에 가해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강한 폭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앞서 말했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가 당사자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다면 이건 아예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진짜 방귀 안 뀐 사람이 뀌었다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속담들대로라면 이런 경우에 화를 내면 그건 억울해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찔리니까 화를 낸 게 돼버린다. 이런 상황이 억울해서 더 화를 내면 진짜 방귀 뀐 게 확실한 거다. 도둑 누명 쓴 게 억울해서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면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하니 당사자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온 몸으로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이미 빠져버린 선입견의 늪 속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 들어간다.


 이렇게 생사람 잡는 속담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도무지 당사자의 말을 귀담아듣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의 얘기를 충분히 들은 뒤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말문을 막아버린다. 억울한 피해자의 발생 가능성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수가 그렇거나,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모두가 그럴 거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폭력이 존재한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속담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속담 하나도 함부로 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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