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일을 하다 보니 인터뷰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미리 약속을 잡고 질문의 내용을 알려준 뒤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실시간으로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불시에 카메라를 들이대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예고 없는 인터뷰를 하게 되면 당사자들은 대부분 당황하며 말을 더듬곤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다음에 미리 질문지를 주면 따로 답을 준비하겠다”며 대답을 미루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상황에서 유난히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올해 여름 유난히 심각했던 수해 속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다 사고로 동료를 잃는 큰 아픔을 겪은 전남 지역의 소방관들이었다. 특별히 홍보나 행정 업무를 하는 소방관이 아닌, 매일같이 재해 현장에 투입돼 구조 활동을 벌이는 소방관들이었는데도 누구나 말만 걸었다 하면 막힘없이 말을 잘했다. 미리 질문 내용을 알려준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틈날 때마다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었는데도 그랬다.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함에 있어 막힘이 없었고, 속내를 털어놓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내용도 인상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사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순간들을 말할 때는 나도 손에 땀이 나는 듯했고, 그 속에 담긴 고통과 상처를 꺼내놓을 때는 내 눈가마저 촉촉해졌다. 인터뷰를 끝내고 소방관 한 분에게 여쭤봤다.
“여기 소방관들은 특별히 말하기 교육을 받나요?
“그럴 리가요.”
“그런데 어떻게 말을 이렇게 다 잘하시죠?”
“할 말이 많으니까요.”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소방관의 짧은 대답에 내 말문이 막혔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걸까. 할 말이 많다고 다 말을 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의 파편들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잘 짚어보니, 이 날 만난 소방관들의 말속에는 이 시대에 말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말을 잘하는’ 중요한 특징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그들은 무언가를 주장할 때 반드시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구조 시스템의 개선 방안을 얘기할 때는 실제로 현장에서 겪은 위기 상황과 그때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식이었다. 특별히 인터뷰라고 해서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았다. 아프거나 부끄러운 이야기마저 주저 없이 털어놓는 그 진솔함은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힘이 있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마음을 열게 했고 그들의 주장에 동화되게 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중요한 자리일수록 말을 더 꾸미게 된다. 연설이나 면접, 프레젠테이션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말을 하게 되면 멋진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멋진 이야기를 자기 자신보다는 외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사람이 남긴 명언이나 오랜 세월 다듬어진 격언을 찾기도 하고, 유명 영화나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따오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말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히려 더 따분하고 뻔한 이야기로 느끼게 하기 쉽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내용이다 보니 호기심도 안 생기고 흥미도 떨어진다. 새롭지도 않고, 감동도 없으며, 차별화도 되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새롭고 차별화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바로 내 경험이다. 나만 겪은 이야기이니,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새로운 이야기이다. 공적인 자리, 중요한 자리일수록 나만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나에 대해 잘 모르고,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물론 내 경험이라고 해서 아무 이야기나 다 통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게 하고, 흥미를 일으키는, 한 마디로 ‘듣고 싶은’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여지게 된다. 특별한 경험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 같고, 나는 너무나 평범해서 중요한 자리에서 공유할 만한 특별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겪은 특별한 경험을 매일 이야기하고 있다. 식당에서, 커피숍에서, 그리고 술집에서, 친구나 동료, 가족에게 이야기하는 것들은 나에게 벌어진 특별한 일들이다. 항상 똑같은 일상에 대해 굳이 힘과 시간을 써가며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도 뭔가 다른, 뭔가 주목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 그 감각을 발휘해 상대가 관심을 가질만한, 그리고 공감할만한 경험들을 매일 이야기하며 함께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영화고 드라마이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없는 삶이 없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지 않는 인생이 없다. 그런 경험을 사적인 자리에서 흘려버리면 별 것 아닌 이야기가 되지만, 잘 다듬어서 공적인 자리에서 내놓으면 나만의 차별화된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내가 겪은 나만의 경험에서 적절한 주제를 찾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듣고 싶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말 잘하는 사람이다.
말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발표나 프레젠테이션, 토론 등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보통 평소 말투와 공적인 자리에서의 말투가 다르다. 중요한 자리에서는 더 격식 있게 말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말투가 딱딱하고 경직돼 있다. 그런 말은 일단 흥미가 떨어져서 듣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당연히 상대에게 감동을 주기가 어렵다.
반면 중요한 자리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의 말이 큰 차이가 없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듯 편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다 보니, 가만히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 속으로 젖어들게 된다.
그것이 말의 유려함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물 흐르듯 유려하게 말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카리스마 있는 태도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말이 교과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유려함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전달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유려한 말솜씨는 오히려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심하면 사기꾼이나 사이비 교주 같다는 얘기까지 듣게 된다.
말을 잘하는 건 중요하다. 짧은 시간에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나의 가치를 보여줘야 하는 공적인 자리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말의 ‘유려함’이 아니라, ‘진솔함’이라는 것이다. 진솔함으로 감동을 주는 말이라면 설사 발음이 좀 뭉개지고 말투가 좀 투박하더라도 사람들은 기꺼이 들을 준비가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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