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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Aug 08. 2022

사내 소문을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막 넘긴 어느 평일 오후.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동료의 얼굴에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동료는 한 후배와 밥을 먹었는데, 식사 시간 내내 직장 생활에 대한 한탄과 하소연, 뒷 담화 등을 듣고 오니 기가 빨린 듯 지친다고 했다. 더구나 며칠 연속으로 점심시간마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과 밥을 먹으며 얘기를 들었더니 힘이 든다는 것이었다. 뭐 하러 그렇게 힘이 들 정도로 식사 시간마다 사람들을 만나느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점심 약속을 잡지 말고, 그때만이라도 좀 편하게 밥을 먹고 쉬라고 했더니 동료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사내 정보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야 해.”


 방송사에서 일하며 직원들이 ‘사내 정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내 소문’에 민감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정보’에 민감한 기자들이 모여 있는 조직의 특성상 많은 이들이 사내에 도는 소문을 빨리 알고 싶어 하고, 혹시라도 자신만 늦게 알게 되면 못 견뎌한다.

 소문의 확산 속도 역시 엄청나게 빨라, 사내 인사와 관련한 굵직한 정보부터 어느 직원의 실수 같은 사소한 소식까지 직원들 사이에 거미줄처럼 촘촘히 뻗어있는 단체 카톡방 등을 통해 삽시간에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 단 몇 분이면 해외에 출장을 가있거나,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 직원에게까지 도달한다.

 그 와중에도 거미줄을 좀 헐겁게 쳐놓은 직원의 경우 중간에 소문이 실종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다 보니, 소문을 놓치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듯하다. 이게 언론사만의 특징인가 했지만, 주변의 다른 직장에 다니는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이런저런 사내 소문에 귀를 솔깃했고, 가끔은 친한 동료에게 “요즘 무슨 소문 없어?”, “뭐 재미있는 얘기 들은 거 없어?”라며 공유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소문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사내 소문의 심각한 부작용을 목격해서였다.


 사내 소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인물평’이다. 누군가에 대한 좋은 평도 있지만 아무래도 많은 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건 부정적인 평들이다. 누구 일 정말 못한다, 업무능력에 문제 있다, 무능하다. 이런 소문이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그 사람과 일을 해보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조차 그에 대해 매우 안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함께 일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는 실제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보통 봄이나 가을, 직원들이 대규모로 부서를 이동하게 되는 인사철이 되면 국장과 팀장들이 모여 인사를 논하는 일종의 인력시장이 열린다. 여기서 각 팀장들은 서로 일 잘하고 능력 있는 팀원을 데려가고 싶어 하고, 일을 잘 못하거나 팀워크에 문제가 있는 팀원은 다른 팀으로 밀어내기 위해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는데, 안 좋은 소문의 당사자들은 각 팀장들이 서로 받기를 꺼려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결국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한 번 소문의 ‘늪’에 빠지면 거기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일단 본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는 사실을 본인만 모르는 경우가 많아,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소문이 퍼져도 해명의 기회가 없다. 더구나 안 좋은 소문일수록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가 부담스러우니 전혀 검증되지 않은 채 소문은 점점 더 증폭돼서 퍼져나간다. 설사 당사자가 그런 소문을 알게 되더라도 이게 어디서 시작돼서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가 없으니 누구한테 가서 따질 수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소문 중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안 좋은 소문의 당사자들과 몇 번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놀라곤 했다. 실제로 같이 일을 해보면 소문과 달리 일을 잘하거나, 설사 어느 부분에서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다른 부분에서는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안 좋은 소문으로 인해 크고 작은 불이익을 당한 이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이런 몇 번의 경험 이후 나는 조직에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절대로 소문에 의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오로지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으로만 판단하기로 한 것이다. 근거를 알 수 없고, 검증되지 않은 헛소문과 가짜 뉴스가 뒤섞여있는 사내 소문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소문을 묻지 않고, 설사 듣게 되더라도 거기에 무게를 싣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소문을 몰라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 아는 소문을 놓쳐도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놓쳐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정보나 소문은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내 귀에 들어왔다. 특히 의미 있는 건 누군가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공유할 때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불편함과 죄책감을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갖가지 소문으로 무장한 인싸가 되기보다는, 소문 좀 모르고 정보에 좀 늦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 아싸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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