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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Jun 19. 2022

쓸데없이 사람들과 밥을 먹지 않기로 했다

 출근을 하면 바쁜 오전 일과에서도 놓치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점심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다. 일을 하는 틈틈이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어디서 먹을지, 그리고 누구와 먹을지를 잘 준비해 놓아야 하는데, 그중 가장 힘든 건 역시 ‘누구’와 먹을지를 정하는 일이다.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은 미리미리 점심 계획을 잘 세워놓기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구멍은 날 수밖에 없는 법. 오전 11시 언저리가 되면 종종 점심전쟁 낙오자들이 구원을 요청해 오곤 한다. 반가운 동료면 당연히 기분 좋게 나가겠지만 때로는 썩 같이 먹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서 연락이 올 때도 있다. 밥 먹는 내내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끝없이 회사 내 이 사람 저 사람을 욕하며 부정적 에너지를 방출해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나는 관심 없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혼자 배꼽을 잡아가며 얘기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냥 내가 안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아무리 약속이 없어도 당신과는 먹고 싶지 않네요”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 그냥 가서 얼른 먹고 올 것인가, 아니면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약속 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인가. 여기서 고민되는 지점은 거절하고 나서 금방 새로운 약속이 잡히면 다행이지만, 점심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고려할 때 끝내 약속 잡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 약속 있다고 거절해놓고 아무 약속을 잡지 못해 혼밥을 하다 그 사람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몇몇 후배들로부터 밥과 관련해 신박한 ‘계’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서로 함께 밥을 먹어주는 계인데, 이 계의 특징은 계원들끼리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계원 중 누군가 회사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사람(대부분은 선배)과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나가서 먹어주며 고통을 분담해주는 계라는 것이다. 후배들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같이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선배는 이런 사정은 모른 채 후배들이 그저 밥 사주면 좋아할 줄 알 텐데, 굳이 자기 돈 써가며 뭐 하는 건가 싶다.


 나는 이런 점심전쟁에 더 이상 참전하지 않기로 했다. 거절 못해서 마지못해 가던 밥자리, 의무감에 자리를 채워주던 밥자리, 눈치가 보여서, 혹은 남들 다 가니까, 내키지 않는데도 억지로 가던 밥자리에 더 이상은 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즐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온 뒤의 공허함과 억지웃음을 지으며 에너지를 쏟은 뒤 밀려오는 피곤함이 싫었다.

 우선 내가 밥 약속을 제안하는 것부터 줄이기 시작했다. 의미 없이 습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밥 약속을 제안하던 것을 그치고, 그 자리가 필요한 자리인지, 혹은 나도 즐겁고 상대도 즐거운 자리인지 생각해본 뒤에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경우에만 자리를 제안했다.

 나에게 들어오는 제안은 걸러서 받아들였다. 마음이 가는 대로 솔직하게 대응했다. 좋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의 약속은 적극적으로 임하고, 썩 내키지 않는 제안은 나에게 일정이 있다고 말하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같은 사람으로부터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어오는 제안은 계속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대개의 경우 한두 번 거절하면 다시 제안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대신 그렇게 비게 된 시간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하루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라도 그때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일단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이나 주변의 혼밥 하기 좋은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하고 싶었던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운동 삼아 회사 주위를 걸으며 산책을 했다. 이것저것 내키지 않을 때는 잠시 눈을 붙이고 쉬기라도 했다. 이런 기조는 점차 저녁 약속으로 확대됐다. 내키지 않고, 즐거울 것 같지 않은 술자리는 눈치가 보여도 과감히 거절했다.

 효과는 좋았다. 우선 쓸데없는 고민에서 해방됐다. 누구랑 밥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고, 즐겁지 않은 자리에서 오는 고단함이 사라졌다.

 반면에 남는 건 많았다. 약속도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니 좋은 사람, 소중한 사람들과의 식사자리는 오히려 더 많아졌다. 나를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운동량이 늘어났고, 내 삶은 더 풍성해졌다.

 물론 지금도 불시에 공격해 들어오는 밥 약속, 술 약속 제안들을 내키지 않는다고 다 피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보니 가끔은 의무감에 식사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 가지 다짐은 한다. 최소한 후배들이 나와의 식사자리에 ‘계’를 가동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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