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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Sep 23. 2021

뒷담화 안하고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몇 년 전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나에게 적잖은 지적 충격을 준 책이다. 중고등학생 시절 시험공부를 위해 무작정 달달달 외우기만 했던 호모 사피엔스니, 네안데르탈인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놀라웠는데, 특히 충격적이었던 건 호모 사피엔스의 ‘언어 발달’에 대한 부분이었다. 인간의 여러 종(種)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그들만이 고유한 언어를 가졌기 때문인데, 그들의 언어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다름 아닌 ‘뒷담화’였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남 흉을 보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했고, 그렇게 뒷담화를 위해 언어가 발달하면서 무리의 결속력이 강화돼 다른 종을 이길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더 놀라운 건 이것이 유발 하라리만의 독특한 생각이 아니라, 이미 매우 많은 언어학자들이 주장해 온 것이며, ‘뒷담화이론’이라는 학설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에서 나에게 충격이었던 부분은 ‘뒷담화가 인류를 발전시켰다’는 것보다, 수만 년 전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원시인 수준의 초기 인류조차 열렬히 뒷담화를 즐겼다는 것이다. 그만큼 뒷담화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에서 뒷담화만큼 달콤한 유혹이 있을까? 대화 도중 상대의 목소리 톤이 살짝 낮아지기만 해도 귀는 쫑긋 세워진다. 곧 누군가에 대한 흥미진진한 뒷담화가 시작될 거라는 육감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평소 꾹 참고 참아왔던 누군가에 대한 신랄한 뒷담화는 힘든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무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하기도 한다. 뒷담화 한 번으로 대화 상대와 내가 갑자기 한 편이 된 듯한 즐거움은 덤이다.


 하지만 뒷담화가 끝난 뒤 찾아오는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맛도 무시하기는 어렵다. 뒷담화의 강도가 셀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뒷담화의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한 죄책감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내가 뒷담화에 동참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뒷담화는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막상 또 누군가 뒷담화를 시작하면 귀는 어느새 그쪽을 향해 열리고, 입은 오물오물 움직인다.


 그런데 뒷담화와 관련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부서의 후배들이다. 열심히 일하기로는 회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희한한 건 도무지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모여 회의를 해도, 밥을 먹어도, 차를 마셔도 도통 뒷담화를 할 줄 모른다. 이들이 워낙 눈에 띄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조직 내에서 이들에 대해 뒷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이들은 누구에 대해서도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외부인이 이들 앞에서 살짝 뒷담화를 시작할라치면 이내 한 명이 웃으며 말을 한다.


“방금 발언은 속기록에서 삭제하겠습니다.”


 막말로 유명한 국회의원들의 속기록 삭제 논란을 빗대 하는 말인데, 그러면 이내 다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오고 뒷담화는 거기서 끝나버린다. 상대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게 말을 끊는 그들만의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직 분위기가 무겁거나 결속력이 약하지도 않다. 팀에서는 언제나 유쾌한 웃음이 끊이지 않고 팀원들의 표정도 밝다. 누군가를 낮추는 방식의 대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서로 즐겁게 대화하고 조직의 분위기도 살리는 건강한 웃음을 즐길 줄 아는 것이다.


 곁에서 지켜본 결과 이들에게선 보통 사람들과 몇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우선 이들은 일을 함에 있어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실행할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남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온전히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다고 믿는 것에 힘을 실었다. 삶의 잣대를 남에게  두지 않는 것이다. 뒷담화는 기본적으로 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이들에게는 남에 대한 뒷담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성과에 대해서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조직에서 누군가 오랜 노력 끝에 큰 성과를 내는 걸 보면 기꺼이 인정해주고 손뼉 쳐줬다. 이들도 사람인데 비슷한 자리에 있는 누군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면 어찌 부러운 마음이 없고 질투 나는 마음이 없을까. 하지만 그 감정을 남을 깎아내리는 부정적인 에너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삼았다. 그러니 굳이 남에 대해 뒷담화를 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언제나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로 향해 있었다. 이들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 가장 많이 하는 대화는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지, 뭘 하면 더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였다. 틈만 나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과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출근 전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어떻게든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부단히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머릿속에 건강한 고민들로 가득 찬 이들에게 남에 대한 뒷담화는 별 재미를 주지 않았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남에 대한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해서도 뒷담화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생각하면 사람들과 뒷담화를 즐기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내가 뒷담화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면 나부터 뒷담화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꼭 필요한 지적이나 비판은 가급적 앞에서 얘기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남에 대한 뒷담화 보다는 나에 대한 좀 더 건강한 고민과 생각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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