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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Mar 10. 2021

내가 헛소문의 대상이 되었을 때

 최근 회사 안에서 나에 대한 헛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에서 장기간 해외에 파견할 직원을 선발하는데 내가 지원하기로 마음먹고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황당한 건 내가 거기에 지원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그런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도 누군가 나한테서 직접 그런 말을 들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의 내용을 보면 너무나 구체적고 그럴 듯 해서 나조차도 그 얘기를 들으면 믿을 만했다.

 이 일은 결국 얼마 뒤 실제 지원자들의 이름이 공개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과정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 조직 안에서 헛소문이 생기고 퍼져나가게 되는 과정이었다. 으레 어떤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은 그것이 완전한 진실은 아니더라도 소문이 생겨날 만한 어떤 작은 근거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굴뚝에 연기 나겠어?”


 하지만 이번 경우를 보면 티끌만 한 근거조차 없는 완전한 백지상태에서도 헛소문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그것이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 점점 구체화되고 살이 붙으면서 누구라도 믿을만한 그럴듯한 이야기로 완성돼 간다.


 나야 헛소문의 내용이 나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인 것처럼 둔갑돼 퍼져나가는 것을 보니 이런 방식으로 악질적인 내용의 헛소문이 난 당사자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나에 대한 말도 안되는 내용의 헛소문이 돈 걸 뒤늦게 안 뒤 화가 나서 잠이 안 온 적이 여러번 있었고, 주위에서도  회사를 다니며 자신이 하지도 않은 안 좋은 말이나 행동을 했다는 헛소문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료들을 여럿 봤다. 그런 헛소문으로 인해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안 좋게 바뀌고, 오랜 시간 힘들게 쌓아 올린 평판이 무너져버리니, 당사자들로서는 정말 억울해서 가슴을 치고 팔짝팔짝 뛸 노릇이다.


 이렇게 조직 안에서 헛소문이 돌 때 당사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해명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야 어떤 소문이 퍼지면 그 내용이 곧바로 인터넷과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되다 보니 금세 본인의 귀에도 들어가지만, 일반적인 조직 안에서의 소문은 직접적인 대면으로 전달되거나,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사람을 특정해서 확산되다 보니 당사자의 귀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다들 그 사람의 뒤에서만 수군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내용이 안 좋은 것일수록 주변 사람들조차 그에게 쉽게 그걸 전해줄 수가 없다 보니 조직 내에서 당사자만 자신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상황이 한참 동안 지속되다가, 당사자가 알 때쯤에는 소문이 퍼질 대로 퍼져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설사 자신에 대한 소문을 일찍 알게 된다 해도 딱히 해명할 길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소문을 들은 이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일일이 찾아가서 해명을 할 수도 없고, 먼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가는 괜히 찔려서 저런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움직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유명인들처럼 공식적인 채널을 이용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애를 태우며 억울함에 몸부림치는 것뿐이다.


 각종 사건을 취재하다 보면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들이 남긴 말 중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억울하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헛소문은 누군가에게 이토록 잔인한 감정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매우 악질적이다. 헛소문은 그 사람의 인격을 갉아먹고 인성을 파괴한다. 별생각 없이 쉽게 전하는 헛소문이 때로는 무고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게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당사자가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면 그 피해는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문은 이제는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의 보급으로 순식간에 다수의 사람에게 퍼지며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평소 소문을 대하는 자세이다.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그 내용이 자극적이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소문일수록 입이 근질근질해서 참기가 어렵다. 소문을 들은 뒤 의심을 해보거나, 확인을 해보기보다는 일단 퍼뜨리고 보게 된다. 하지만 미디어를 접할 때 가짜 뉴스를 걸러 들어야 하듯,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들 역시 너무 쉽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누군가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라면 아무리 그럴싸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함부로 예단하지 말고 당사자의 얘기를 한 번쯤 들어줄 필요가 있다. 언젠가 그 억울한 당사자가 바로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억울한 헛소문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 내가 겪어보니 사람은 누구나 살다 보면 몇 번씩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억울한 상황을 맞게 되며, 가짜는 진실이라는 생명력을 갖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힘을 잃게 되더라는 것이다. 헛소문 역시 때가 되면 언제 그런 얘기가 있었냐는 듯 힘을 잃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오는 만큼,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세상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까지 기다려 봤으면 좋겠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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