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브런치 독자 여러분
이번에 제 책이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이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듣기 수업'입니다.
책의 '여는 말'로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 여는 말 ]
“말을 잘 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말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자주 강조하는 얘기다.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내 말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말을 하는 건 언어로 상대를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인 만큼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듣기’는 말을 잘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듣는 게 잘 듣는 것일까? 상대가 얘기할 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잘 듣는 것일까? 상대방의 말을 들리는 그대로 이해하면 잘 듣는 것일까? 잘 듣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잘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유명한 독일 문학가 미하일 엔데(Michael Ende)의 소설 '모모’에는 듣기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의미 있는 얘기가 나온다. 주인공 모모는 버려진 원형극장에서 홀로 살아가는 소녀다. 처음에는 모모에게 별 관심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그가 누구의 얘기든 잘 들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속마음을 마음껏 털어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나중에는 누가 걱정이나 고민이 있으면 “아무튼 모모에게 가보세”라고 얘기할 만큼 모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작가는 말한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종류의 갈등 중 상당수는 잘 듣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친구나 동료, 연인, 부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대화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면 어김없이 누군가 소리친다.
“아니! 내 말뜻은 그게 아니라고!”
서로 상대가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자기 주장만 내세운다며 책임을 돌리다 끝내 대화와 설득을 포기하고 말한다.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해.”
업무능력에 문제가 있어 일에 지장을 초래하는 직장 동료나 후배, 상사를 지적할 때에도 꼭 나오는 말이 있다.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들어.”
모두 문제의 주요 원인을 잘 듣지 못하는 데서 찾는다. 누구나 듣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요한 듣기 능력을 기르기 위해 공부하거나 노력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듣기’는 ‘읽기’와 ‘쓰기’, ‘말하기’와 함께 4대 언어활동의 하나이지만, 어렸을 때는 물론 성인이 된 뒤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 배우고 공부하는 읽기, 쓰기, 말하기와 달리 ‘듣기’는 학교에서도 잘 가르치지 않는다. ‘듣기’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을 업으로 하는 방송기자와 앵커로 20년간 활동하며 느낀 건 ‘듣기’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는 것이다. 나는 관심 없고 상대에게만 중요한 얘기, 요지가 불분명한 얘기, 진의를 숨긴 얘기가 뒤섞인 언어의 숲 속에서 보석 같은 이야기를 찾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스스로 맥락을 찾아내는 분석과 통찰은 물론, 인내와 끈기, 배려가 필요한 매우 주체적이고 복합적인 행위이다.
듣기는 기본적으로 말을 통해 이해하는 언어학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심리학이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파악하는 사회학이기도 하며, 숨은 의도와 구조적 맥락을 읽어내야 하는 정치학이기도 하다. 결국 잘 듣는 사람이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잘 맺는다. 평범한 사람을 얘기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듣기의 마법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