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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05. 2024

불에 탄 냄비

2023.11.16.목요일

문법 수업

조동사에 대한 연습문제를 풀고 나서 바로 새로운 단원으로 넘어간다. 조동사도 어려운데 그것에 대한 확장판이란다. 과거에 대한 권고. should have, ought to have, could have, might have 이렇게 네 가지가 나온다. 모두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나 조언을 담고 있단다. 그런데 교사 M은 should have, could have, would have에 대해서만 설명했다. should have는 과거에 했던 것과 다른 행동을 추천하는 것이라고 하고, could have는 과거와는 다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would have는 과거와 다른 일이 발생했다면 다른 결과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나타낸단다. 나에게는 그놈이 그놈같다. 본문도 읽고 문제도 풀어보았으나 뭐 그다지 구분이 잘 가지는 않는다. 이따가 다시 복습하면서 차분히 살펴봐야겠다. 



듣기 수업

단어에 대한 연습문제를 풀고 나서 방송을 듣고 받아쓰기를 했다. 윽. 손이 너무 아프다. 나는 오른손이 아파서 마우스를 왼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글씨는 오른손으로 쓸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받아쓰기를 하면 거의 손이 마비되는 것 같다. 오늘은 빈칸 메꾸기가 아니라 받아쓰기다. 핵심은 주로 대문자로 쓰는 지점, 문장 부호가 들어가야 할 곳을 짚어내는 것이다. 어쨌든 엄청 많은 글씨를 쓰고 나니까 손이 너무 저리다. 제발 받아쓰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빈칸 메꾸기까지는 내가 어찌어찌 써보겠지만 전체 받아쓰기는 너무 힘들다.



쓰기와 읽기 수업

드디어 오늘 새로운 본문을 읽었다. 다음주 화요일이 시험인데 이제서야 새 본문을 배우다니 너무 느리다. 미리 읽어보고 단어도 좀 찾아두었기에 수업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한참 어려웠을 것 같다. 핵심 내용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 주요 내용 다섯 가지 쓰기 등을 했다. 내용을 대충 알기에 답을 적을 수 있었다. 이게 이 학원에서 배우는 마지막 본문이겠구나. 내용은 완벽주의의 문제점이다. 완벽하게 일하려는 사람들은 막상 일을 제대로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 중에는 거식증에 걸리는 사람도 있단다. 이런 성향의 원인에는 유전적 요인도 있고 성장배경도 작용한단다. 나는 애초에 완벽하게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니까 자기 신상을 들들 볶는거지. 내가 이런 성격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점심시간

밥을 먹고 나서 문법 숙제와 복습을 했다. 이번에도 일본의 귀여운 여학생들이 우루루 와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를 한다. 나도 그 학생들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겨우 몇 명은 이름을 맞추었지만 모두를 기억하기는 어려웠다. 이 나이 때의 여학생들은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는데 정말 이 학생들이 그렇다. 그저 복도에서 마주쳤을 뿐인데 좋다고 손을 잡고 팔딱팔딱 뛴다. 같이 뛰어주니까 더 즐거워한다. 그래. 울상으로 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밝은 것이 좋지. 간혹 보면 세상의 온갖 근심걱정을 다 안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한 학생들도 있다. 그런 것보다 이렇게 신나고 즐겁게 지내는 학생들이 더 보기가 좋다. 외국의 학생들이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것도 좋다. 



회화 수업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일본 학생과 한국 학생이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일본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부모가 특히 엄마가 결정해주는 대로 살아와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단다. 한국 학생이 안타까워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여기서 얼마나 공부할 예정인지 물었다. 앞으로 10개월 정도 더 공부할 거란다. 그 정도면 되었다. 너는 이제 겨우 여기 온지 2달이 되었다. 아직은 너 자신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10개월이면 충분히 너는 너 자신을 찾을 것이다. 지금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많이 경험하고 도전하면서 즐겨라. 그러면서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 자신을 살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서투른 영어로 한 것이지만 최대한 쉽게 말해서 알아들은 듯하다. 사실 학생들 중에 이런 경우가 아주아주 많다. 자신이 무엇을 결정해본 경험이 적은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부모가 이런 점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스스로 도전하게 해야 한다. 물론 때로는 실패도 하고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다음 주 화요일에 해야 하는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학급 친구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단다. 같은 나라의 학생들은 서로 겹치지 않도록 의논해보란다. 서로 협조해도 좋다. 가령 우리의 명절 추석을 소개한다면 한 명은 음식을, 한 명은 행사를, 한 명은 놀이를 맡아서 해도 될 것이다. 멕시코 친구들이 그렇게 했단다. 우리는 한국 학생이 3명이라서 서로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고 조율을 했다. 나는 전통 놀이를 소개하거나 명절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한 친구는 음식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나머지 한 친구는 아직 고민 중이다. 만약 그 친구가 놀이를 소개한다면 나는 명절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각 나라별로 의논한 후에는 그룹 토론을 했다. 오늘은 무례한 경우나 좋지 않는 상황에 대한 토론을 했다. 가령 친구가 지갑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해서 점심을 내가 샀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반복된다. 그럴 때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비교적 단호했다. 그 친구가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므로 그와 관계를 단절하겠다. 다들 이런 점에서는 칼같다. 그밖에 옷을 잘못 입고 온 경우, 소개팅을 하는데 폭탄을 만난 경우, 식당 종업원이 무례한 경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식당 종업원의 무례함에 대해 여기 학생들이 당한 경험이 무척 많다. 어떤 학생은 아예 대놓고 종업원이 '너는 영어를 못하지? 너는 일본 사람이지? 내가 하는 말 못알아듣지?' 이렇게 무례하게 말했단다. 허걱. 그래서 이 학생은 화가 나서 구글맵의 후기 쓰기를 이용해서 무례함에 대해 항의했단다. 그랬더니 식당의 매니저가 사과의 답글을 썼다고 한다. 교사가 그 말을 듣고 또 흥분해서 어디냐고, 누구냐고 난리다. 교사는 종업원이 무례하게 굴면 이름을 물어본단다. 사실 그보다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름을 물어보란다. 대부분 이름표를 달고 있거나 자신을 소개하고 주문을 받는다. 이름을 물어보면 아무래도 긴장을 하게 되겠지. 좋은 방법이다. 나도 기억해두어야겠다. 다행스럽게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무례한 경우를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다문화 사회라고 해도 여기에도 인종차별은 있다. 이런 차별을 당하면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보충 수업

오늘은 지난 시간에 배운 메뉴를 토대로 우리가 각자 식당을 차린다고 가정을 하고 한 사람씩 자신의 식당을 소개하는 활동을 했다. 교사는 우리에게 식당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신청하면 틀어주겠단다. 팝송, 클래식 등의 음악을 배경으로 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식당을 소개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 레스토랑을 차렸다. 식전 메뉴, 본 메뉴, 후식 등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어떤 학생은 중국요리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북경식 요리와 사천 요리 등의 이름과 설명을 들으니 재미있다. 식당 주인이 되는 역할극을 하고 나서 주문과 예약에 대한 회화를 함께 읽었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보충 수업을 끝내고 나서 한국에 가져갈 선물들을 몇 가지 사가지고 집으로 왔다. 슬슬 가방을 꾸릴 때가 되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니까 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리고 솥이 새까맣게 되어 있다. 뭔일인가 했더니 미국 친구 M이 나와서 이메일을 확인해 보란다. 이메일을 보니까 오후에 기숙사에 난리가 났었나보다. 누군가 불을 끄지 않고 나가서 냄비가 타고 화재 경고가 발동했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할 뻔했던 것이다. 어휴. 큰일날뻔했네. 이메일에서는 이 심각한 상황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불을 끄지 않았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주방도구에 대한 손해배상과 냄새가 심각할 경우 냄새를 빼는 비용까지 청구할 기세다. 심각한 상황이다. 

나는 오늘은 요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침에 나갈 때 미국 친구, 멕시코 친구가 주방에 있는 것을 보고 나왔다. M은 탄 냄비는 자신의 스프란다. 하지만 자신은 분명히 불을 끄고 나갔단다. 그리고 자신이 나갈 때 학생들 두 명 정도가 요리 중이었단다. 일단 이따가 그들이 들어오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단다. 누군가는 불을 끄지 않고 나갔지만 아마도 그걸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이런 일이 있어도 M은 즐겁게 또다른 요리를 한다. 이번에는 주키니 브레드 즉 호박 빵이란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호박을 채써는 기계로 가늘게 채썰고 밀가루와 이스트, 약간의 향신료, 물을 섞어서 오븐에 굽는다. 물론 여기에 사용된 밀가루는 밀 알러지가 있는 M을 위한 특수한 밀가루다. 그런데 오븐의 위칸에 넣은 빵은 살짝 타고 아래칸에 넣은 빵은 가장자리만 익고 가운데는 덜 익었다. 우리집에서 이 오븐을 가장 많이 사용한 미국 친구이지만 빵은 처음 시도해본다. 아무래도 빵을 구울 때는 2단으로 하면 안될 것 같다. M은 제대로 익은 부분은 썰어내고 아직 익지 않은 가운데 부분은 다시 오븐에 넣어서 구웠다. 그리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빵의 일부를 나에게 맛보라고 준다. 호박 빵은 처음 먹어보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호박이 간간히 씹히는 것이 제법 맛있다. 한국에 가면 나도 시도해봐야겠다. 여기서 미국 친구에게 요리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게 되었다. 여러 모로 유익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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