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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07. 2024

맛있는 꼬막 비빔밥

2023.11.17.금요일

어제 밤 늦은 시간에 귀가한 여러 친구들과 불에 탄 냄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다들 자신은 아니라고 한다. 그럴 것 같았다. 알고 그랬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쨌든 일단 여기 학생들은 모두 안 그랬다고 하므로 기숙사 측에서 뭐라고 할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문법 수업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약간의 시간이 있어서 오늘 나가리라 예상되는 부분의 문제를 미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교사는 내가 예습한 문제는 건너뛰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 진도를 나간다. 게다가 어마무시한 속도로 연습문제를 풀더니 다음 단원으로 또 건너뛴다. 우왕. 진도가 겁나 빠르다. 이번에 배우는 것은 과거에 대한 추측과 결론을 의미하는 조동사들이다. 지난 단원과 마찬가지로 could have pp, might have pp 등이 사용된다. 정신없이 진도를 잡아 뺀다. 아마도 월요일 레벨 테스트가 있어서 더 빨리 서두르는 것 같다. 에휴. 조동사가 쉽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는 바이다. 조동사도 어렵다. 





듣기 수업

어제는 전체 받아쓰기로 힘들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빈칸 메꾸기를 한다. 이 정도는 그나마 할 만하다. 딱 두번만 들려주는 것에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처음에 잡아내야 할 것과 두번째 들을 때 확인할 것들을 염두에 두고 방송을 듣는다. 아직 스펠링까지 신경쓸 수준은 아니라서 일단 들리는데로 써본다. 가끔은 들리는데로 쓴 것이 맞을 때도 있다. 하.하.하.



읽기와 쓰기 수업

금요일이라 그동안 작성한 주간 과제물을 제출했다. 우리가 연습문제를 잔뜩 푸는 동안 교사는 열나게 학생들의 과제물에다가 피드백을 해서 주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수들이 있다. 전치사와 관사를 가장 많이 빼먹었거나 틀렸다. 그런데 내가 주제문장이라고 쓴 것을 교사는 주제문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스트레를 주는 것들의 리스트를 3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작성했다고 말한 것이 주제문장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면 주제문장에는 뭘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내가 생각하는 주제문장과 교사가 생각하는 주제문장의 개념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점심 시간

오늘 점심시간에는 기숙사로 열나게 걸어 왔다. 다음 주 채크아웃을 하기 전에 기숙사 측에서 방을 점검하러 나오기 때문이다. 파손된 것이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쭈욱 둘러보고는 이상 없음에 대해 확인하는 싸인을 했다. 다음주 금요일에 여기서 나갈 때 열쇠를 입구의 상자에 넣으라는 말을 들었다. 이미 떠나는 친구들을 배웅하면서 보아서 알고 있다. 

아, 감회가 새롭다. 이 기숙사에 처음 들어오던 날이 생각난다. 영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아서 당황하면서 안내를 받았고 어리버리한 상태에서 우리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그때의 두려움과 걱정은 어마무시했다. 벌써 5개월이 흘렀구나. 외국에서 처음 살아보는 경험. 나는 그것을 해냈구나.  



회화 수업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회화 수업에 참여했다. 다음 주 화요일 개인 발표 준비를 했다. 우선 각 나라의 학생들끼리 모여서 서로 발표 주제가 겹치지 않도록 의논을 했다. 나는 우리 한국 친구들과 의논해서 각자 주제를 확정했다. 나는 한국의 공예를, 다른 친구들은 한국의 음식, 한국의 놀이를 각각 선택했다. 주말동안 잘 준비해야지. 이게 마지막 발표일테니까.

각 나라별로 논의한 후에 이번에는 각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스테레오 타입, 전형적인 인식에 대해 토의했다. 한국사람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은 어떨까? 부지런하다. 일을 많이 한다. 교육열이 높다. 성형미인이 많다 등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밖에 일본, 남미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사는 이곳에 와서 아마도 친구들을 만나면서 국제적으로 서로 이해를 잘 하게 되었을 거라고 했다. 맞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외국인들에 대한 인식 중에 틀린 것도 있고 맞는 것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특성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개성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런 사실을 잊고 묶음으로 인식해서 편견을 갖기도 한다. 교사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말하기 실력이 엄청 늘었다면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서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라고 했다. 그래. 수고들했다. 그리고 고맙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워터프론트역으로 향했다. 컴퍼스카드(교통카드)를 해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정말 잘 사용했다. 하지만 다음주에 떠나야하고 그 사이 사용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해지하고 보증금과 잔액을 돌려받으려 한다. 공항까지 가는 전철이나 잠깐 이용하게 될 버스는 한국에서 가져온 카드로 이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굳이 컴퍼스카드를 만들었는가? 이게 장기적으로 이용하면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워터프론트 역에 있는 컴퍼스카드 사무실에 가서 환불하러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충전할 때의 영수증이 있냐고 묻는다. 허걱. 충전할 때의 영수증을 내가 가지고 있을리가 없지. 그랬더니 충전했던 카드를 보여달란다. 그리고 메모를 하더니 잠시 기다리란다. 쩝. 생각해보니까 뭐든 환불을 받으려면 해당 영수증을 지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그 생각은 못했다. 잠시 후에 직원이 부른다. 보니까 전산으로 검색해서 나의 영수증을 찾았다고 보여준다. 다행이다. 무사히 환불을 받았다. 

남은 금액은 내가 보여준 그 카드에 입금시켜 주었다. 그것은 이곳 캐나다의 은행 계좌에 연결된 카드다. 캐나다 은행 계좌도 닫아야 하는데 은행 계좌를 닫기 전에 컴퍼스 카드를 먼저 해지하는게 순서일 것 같아서 여기부터 왔다. 잘했다. 은행계좌를 먼저 닫았으면 복잡해질뻔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은행 계좌를 닫으러 가야겠다. 또 그밖에 여기서 생활하면서 벌여놓은 것들 점검해서 잘 마무리하자.



컴퍼스 카드를 해지하고 나서 슬슬 걸어서 집으로 왔다. 가방을 내려 놓고 밋업 영어회화 모임에 갔다. 커다란 테이블에서 낯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 학생들, 중국계 캐나다 사람, 한국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계 캐나다 사람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를 할 줄 안단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하는 편이란다. 특히 그는 한국과 일본의 뉴스를 매일 읽고 본단다. 외국의 뉴스를 본다는 것은 꽤 수준이 높은 편이다. 다들 감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왜, 어떻게 다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어는 한자어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분해해서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었고 한국은 처음에는 한자어를 받아들였지만 결국은 한글을 창조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각국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나의 사이프러스 친구가 와서 자리를 이동해서 다른 테이블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운 테이블에서는 베네수엘라에서 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하면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온라인으로 일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일할 때 편리하다고 했다. 사이프러스 친구도 온라인으로 일한다. 둘은 서로 공감하면서 한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경험이 없는 분야라서 별로 할 얘기가 없다. 그러다가 화제가 바뀌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살고 있다.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 베네수엘라 사람은 가족이 가장 그립단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일하다가 힘들어도 가족과 함께 있으면 다 잊을 수 있단다. 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 컴퓨터가 가장 그립다고 했다. 게임을 제대로 하고 싶다. 사이프러스 친구는 잘 모르겠단다. 물론 가족은 그립지만 내년에 가서 만날 예정이라서 아주 많이 보고 싶은 것은 아니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사이프러스 친구에게 오로라 사진을 찍을 때의 유의점을 물어보았다. 그는 일단 내 휴대폰의 일반 기능으로 사진을 찍어본 다음에 조절이 필요하면 전에 설치한 어플로 조절하라고 알려주었다. 이것저것 조절할 필요는 없고 노출시간만 조절하면 나머지는 그 노출시간에 맞게 자동으로 세팅되니까 하나만 조절하란다. 내가 오로라 사진을 찍으면 인스타에 올릴 테니까 잘 보라고 했다.

베네수엘라 사람이 시간이 되어서 자리를 떠났다. 이제 슬슬 다들 일어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사이프러스 친구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얼마전에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차인 것이란다. 허걱. 괜챦냐고 물으니까 어깨를 으쓱한다. 그녀와의 몇 가지 어려웠던 점들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니까 그녀는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사이프러스 친구에게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아주 근사한 여자친구를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위로해주었다. 내가 오로라를 보고 소원을 빌 때 너에게 근사한 여자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겠다고 말해주었다. 고맙단다. 이 친구는 다음주 금요일에 자신은 이 모임에 나오지 않는단다. 어디 갈 일이 있단다. 어? 그러면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다. 서로 아쉬워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모임에서 친해진 한국 친구들, 일본 친구들, 대만 친구 등 몇 명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사이프러스 친구도 같이 간단다. 잘 되었다. 한국 친구들이 할인받을 수 있는 한국 식당이 있다고 해서 거기로 향했다. 사이프러스 친구도, 일본 친구도 다들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좀 멀어서 걸어가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들 맛있는 것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결론은 아주 대만족이었다. 포차 즉 술집이라서 술을 함께 먹었어야 하는데 일본 친구들이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해서 그냥 밥만 먹었다. 식당에는 좀 미안했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여러 명이 가니까 골고루 시켜서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볼 때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꼬막 비빔밥이다. 양념을 제대로 해서 너무 맛있다. 두번째는 짬뽕이다. 완전 불맛을 제대로 낸 해물 짬뽕이었다. 그밖에 치킨(엄밀히 말하면 치킨이 아니라 깐풍기)도 맛있었다. 다만 짜장은 좀 별로였다. 일본 친구들은 완전 흥분해서 한국 음식 최고, 한국 친구 최고라는 말을 100번쯤 했다. 나중에는 친구들이 그 말을 그만 하라고 할 정도였다. 사이프러스 친구도 한국 음식이 맛있어서 몇 번 먹어보았다면서 이 집에서는 꼬막 비빔밥과 치킨이 맛있다고 했다.

한국 친구들이 커뮤니티에 음식 사진과 품평을 올리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절반으로 할인을 받았다. 함께 나누어서 음식값을 내는데 각자 12,000원 정도 냈다. 다들 너무나 저렴한 비용에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보기에도 이 물가 높은 밴쿠버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이 가격에 먹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걸어오다가 사이프러스 친구가 먼저 자신의 집 방향이라면서 작별을 했다. 그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인사를 했다. 문득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이 밋업 모임에서 커다란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도 쑥스러워하고 나도 쑥스러워했다. 게다가 나의 영어 실력이 많이 낮아서 이야기 하는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대화 중에 사이프러스와 한국이 모두 분단 국가라는 것을 알고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내성적이라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것은 자신의 도전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이제 그는 이 도전을 훌륭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오늘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해서 나는 좀 놀랐다. 나와 많이 친해져서 그런 이야기도 한 것 같다. 진심으로 그에게 마음 따뜻한 여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와 한국 친구들, 일본 친구들은 함께 걸어왔다. 한국 친구가 차를 세워둔 곳이 마침 나의 집 근처 공원이다. 이 친구가 나머지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 줄 것이란다. 덕분에 함께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 친구는 혹시 공항까지 갈 때 짐이 많으면 자신이 데려다 주겠단다. 정말 마음 따뜻한 제안이다. 고맙지만 나는 배낭 하나만 매고 가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전에 한영 언어교환 모임에서도 한 친구가 짐이 많으면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여기에 와서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다들 너무 고마운 말을 해준다. 친구들과 작별하고 집으로 왔다. 모처럼 외식을 해서 기분이 좋다. 게다가 좋은 친구들과 한바탕 웃으면서 식사를 즐겨서 더 좋다. 나의 친구들.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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