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8.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방 청소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짐을 싸기 위해 가방들을 늘어놓았다. 방의 한쪽에 한국에 갈 커다란 트렁크, 쿠바 여행에 가져갈 가방, 옐로나이프에 가져갈 가방 이렇게 세 가지를 펼쳐 놓았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일정을 잡았다는 후회를 하는 중이다. 더운 나라인 쿠바에 가져갈 여름 옷과 엄청 추운 옐로나이프에 가져갈 옷이 확연히 다르다. 바보.
하나 둘씩 들여놓은 살림들이 꽤 되지만 대부분 친구들에게 주고 가거나 버릴 것들이다. 의외로 한국에 가져갈 짐은 단순하다. 그런데 고민이 된다. 쿠바에 2주간 가 있을 것이라서 노트북을 가져갈 건데 옷짐과 노트북짐까지 더하니까 어깨에 매고 다니기에 너무 힘들 것 같다. 아무래도 작은 트렁크를 가져가야겠다. 작은 트렁크에 넣었던 옐로나이프 짐을 다른 가방으로 옮기고 짐을 다시 꾸렸다. 에고고, 허리가 아프다.
짐 정리 후에는 다시 공부 모드. 다음 주 월요일의 문법 복습도 해야하고 화요일의 회화 발표도 준비해야 한다. 왜 나는 이렇게 늘 바쁘게 사는 것일까? 가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래도 찝찝하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했다. 회화 수업의 발표는 우리 나라의 전통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단순히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참여하여 체험도 할 수 있어야 한단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추석 차례에 대해 소개할까 했는데 학생들이 체험할만한 부분이 없다. 방향을 바꾸어서 우리나라 전통 공예를 소개하기로 했다. 뭔가 학생들이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을 고려하다보니까 딱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전통 매듭이다. 물론 여러 나라에 각각 전통 매듭들이 있고 각각 특징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전통 매듭도 꽤나 아름답다. 열나게 검색해보니까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팔찌가 있다. 영상으로도 잘 설명되어 있어서 함께 보면서 만들면 되겠다. 그래서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문제는 적당한 끈을 찾아서 실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믿을 곳은 달라라마 뿐이다. 전에 거기서 다양한 실과 끈들을 보았다.
집을 나서서 달라라마에 갔다. 평소에 가던 곳에서는 이런 저런 실과 끈을 찾았다.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근처의 큰 달라라마를 찾아갔다. 역시 큰 곳이라 종류가 더 다양하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다. 적당한 굵기와 예쁜 색깔의 끈이다. 우선 하나만 사가지고 집에서 실습해보고 나서 다시 사기로 했다. 달라라마 근처가 밋업 모임 장소다. 히히. 아주 좋은 동선이다.
밋업의 한영언어교환 모임에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주 토요일이 마지막 날이라니까 친구들이 아쉬워한다. 나도 그렇다. 몇 명은 다음주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부터 공부 이야기, 워킹홀리데이와 다른 비자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밴쿠버의 겨울을 어떻게 지내는 것이 현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밌는 것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말한 사람들은 대부분 겨울에 어디론가 여행을 갈 계획이 있다는 점이다. 하.하.하.
대만친구 J도 밋업 모임에 합류했다. 그녀도 이제 이 모임의 일원이 되어 간다. 밋업 모임이 끝난 후에 함께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함께 문법 공부를 하고 나서 미국 친구 M과 대화를 하기로 했다. J가 오늘 밋업 모임에서 어떤 그룹에서는 대화가 끊어져서 어색한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주제를 몇 가지 생각해두는게 좋다고 조언해주었다. 음식 이야기가 가장 좋다. 대만 음식을 소개해주거나 한국 음식 먹어본 적 있는지 등으로 이야기를 하면 무난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 다음은 여행 이야기도 좋다. 다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굳이 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밴쿠버에서 다녀온 공원이나 산책로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서로 아는 장소가 나오면 더 반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J는 나에게 이 모임을 소개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연습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도움이 된단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어서 고맙단다. 내가 더 고맙지. 항상 나를 챙겨주려고 하는 마음이 항상 고맙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 이곳에 남게 되는 그녀가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녀는 나보다 영어를 잘하니까 괜찮을 것이다. 집에 와서 함께 문법 복습을 했다.
우리가 공부하는 사이에 미국 친구 M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나왔다. 역시 친절한 M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자신이 만든 서양호박 빵을 슬쩍 내민다. 간식으로 먹으라는 것이다. 하하. 가끔은 입시 공부하는 아이들 챙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빵을 먹으면서 문법 공부의 마무리를 했다. M과는 간단하게 요리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J가 가려니까 M은 그 사이 요리한 음식을 싸주었다. 에고 고마워라. 나에게도 주었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내일 아침에 먹기로 했다.
내 방으로 들어와서 사가지고 온 실을 가지고 매듭을 만드는 연습을 해 보았다. 윽. 내 손이 똥손이라 쉽지가 않다. 역시 나는 손으로 뭔가 정교하게 하는 작업에는 영 소질이 없다. 괜히 이걸 선택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차라리 탈춤을 소개하고 가면그리기를 할껄 그랬다. 하지만 한번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한 후에 소개하는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역시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마지막 발표니까 더 열심히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