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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09. 2024

작별 점심과 편지

2023.11.19.일요일

아침부터 또 나는 분주하다. 어제 짐을 싸면서 버리기로 작정한 것들을 내다 버리고 나간 김에 근처 런던 드럭스에 가서 화장실 휴지를 사왔다. 우리 집 화장실의 휴지가 떨어져가는데 아무도 채워넣지를 않는다. 남은 일주일동안 내가 불편할 것 같아서 휴지를 사와서 채워 넣었다. 내가 가고 나면 누군가가 신경써야 할텐데... 뭐, 누군가는 하겠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발표 자료를 다듬고 영어 스크립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통매듭 만들기 연습을 더 했다. 근데 뭔가 좀 아쉽다. 너무 간단한 팔찌라서 이게 한국적인 것이라고 하기 좀 애매하다. '동심결'이라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어려울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이런저런 검색을 하는 사이에 벌써 12시. 오늘 점심은 기숙사의 미국 친구 M, 일본 친구 K 그리고 몇 명 학원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나의 송별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학원 친구들은 대만 친구 J와 나의 앞집에 사는 한국 친구, 대만 친구들이다. 집 근처의 식당을 M이 추천해서 함께 그곳으로 갔다. 베트남 음식점인데 다양한 국수 요리와 샌드위치 등이 있다. 반미 샌드위치를 먹을까 하다가 그것은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까 색다른 국수 요리를 시켰다. 다들 자신의 취향대로 요리를 시켰다. 미국 친구는 고기를 추가 주문했고 어떤 친구는 스프링롤을 따로 시켰다. 나는 예상했던 대로 접시가 커서 뭔가 추가하지 않기를 잘했다. 한 접시 먹는데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맛있었다. 




우리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면서 아쉬워했다. 친구들은 향후 나의 일정을 듣고는 혀를 내두른다. 내가 너무 어마무시한 여행 계획을 세운 것 같다. 다들 건강하게 잘 여행 다녀오고 한국에 잘 들어가란다. 앞집에 사는 한국 친구와는 한국에서 한번 보자고 했다. 그녀는 내년에 귀국한다. 대만 친구들도 다들 내년까지 이곳에 있을 거란다. 나는 내가 떠난 후 대만 친구 J와 미국 친구 M이 외로울 것 같아서 토요일에 모여서 하는 회화 모임을 계속 하라고 했다. 

식사 후에 약속이 있는 친구들은 제갈길을 가고 나머지 일행은 집으로 왔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일본 친구 K가 무척 아쉬워하면서 나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잠깐 밴쿠버에 들를 때 볼 수 있으면 보자고 한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내 비행기 일정이 빡빡하다. 쿠바에서 다시 밴쿠버로 오면 새벽 비행기인데 그날 오후 비행기로 옐로 나이프로 떠난다. 밴브릿지에 맡긴 짐을 찾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아마 만나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K는 여행 잘 다녀오고 인스타를 통해 인사를 나누자고 했다. 앞집 친구들은 잠깐 우리 집에 들러서 M의 호박 빵을 하나씩 받아들고 각자 집으로 갔다. M이 아주 흐뭇해한다. 


방으로 들어와서 보충 수업 교사였던 M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한달쯤 전에 갑자기 학원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보충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M이 언제 오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도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뭔가 좀 안좋은 일인 것 같다. 나는 중후한 음성으로 천천히 말해주었던 M이 그립다. 나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해주었고 이런저런 것을 가르쳐주면서 우리가 잘 해내면 무척 기뻐해주었던 교사다. 나는 그녀에게 직접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서 내심 이번 달에는 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결국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M에게 편지를 써서 데스크에 맡겨야겠다. 그리고 나의 문법 교사였던 S를 비롯한 몇 명의 각별한 교사들에게는 떠나는 날 꽃을 한 송이씩 선물하려고 한다. 





편지를 다 쓴 후 다시 발표 준비 돌입. 영상을 보면서 '동심결'이라는 것을 내가 만들 수 있는지 연습해 보았다. 한번 성공을 하긴 했는데 이래서야 학생들과 함께 실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몇 번 더 도전해보고 안되면 그냥 단순한 팔찌를 만들어야지 뭐. 이럴 때는 손재주가 많은 친구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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