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검도 대련이란 상대를 압박해서 상대가 먼저 움직이게(뜨게) 만들고 그때 주저없이 내몸을 던져서 한칼로 상대와 승부를 내는 것이 검도의 매력이자 추구해야 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던져서 한칼을 만든 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약점(반격 당할 공간)을 동시에 열면서 나를 던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 머리를 베려고 내 몸을 던진 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의 허리와 손목이 잘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상대의 머리를 치기위해 내 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상대의 손목이나 허리를 공격 할 때는 내 머리가 상대에게 맞을 각오로 몸을 던지는 것이고..)
하지만 검도의 묘미와 배움 궁극은 내가 몸을 던져서 상대를 먼저 때리는(베는 것)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내 몸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용기를 내기 위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몸을 던질 때 상대에게 반격을 당해서 맞게(베이게) 되더라도 그것을 막으려고 이미 던져진 몸을 이상하게 틀어서 "상대방의 칼을 막지 않고 깨끗이 상대에게 베일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기이자 나를 버리는 것의 완성인 것이다.
그런데 간혹 대련을 하다 보면 "지나친 승부심과 경쟁심"으로 상대를 이기고(때리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몸을 던지는 머리치기 보다는 페인트성의 손목공격에 대부분 치중을 한다. 그리고 상대가 머리치기를 하면 위협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방 목에 칼을 걸고, 만일 간혹 자신이 머리치기를 할 때 상대방이 허리치기로 반격을 하면 자신이 머리치기 하던 팔을 내려서 상대의 허리치기를 막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1, 2단까지는 손목치기를 많이 했던 적이 있었고, 내가 머리를 공격할 때 상대가 허리를 치면 양팔로 내려서 상대의 허리치기를 망가트리는 것이 "내가 반사신경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보같이 치기 어린 시절"이 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행동은 상대방의 공격을 무의식적으로 방어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움직임이긴 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일 검도를 수련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초심자나 1, 2단을 벗어나 3단 이상의 수련자가 이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옳바르지 않고 부적절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들 상대방에게 맞는 것이 즐거우랴만은 검도를 수련하면서 바른 칼을 쓰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바른 칼 공격에 깨끗하게 내가 맞는 것 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단이상 일정 이상 수련을 했음에도 자신은 맞기 싫은 검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는 상대를 서로 존중하며 배움을 추구하는 상호 수련의 교검이 아닌 상대를 한대라도 더 때리고자 하는 욕심으로 자신만의 승부욕만을 채우고자 하는 죽도 칼싸움을 하는 것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자신이 대련 시 상대방에게 유효격자를 맞아 그 대련을 끝마쳤을(졌을) 경우 잠시 후에 또 다시 대련을 요청 한다는 것이다. 소위 "복수전"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다음 대련에서는 더욱 더 자신이 때리고자 하는 데만 집착하는 검도를 하기에 나는 이것이 "파이팅 스피릿" 이거나 상대를 존중하며 배움을 청하는 검도의 대련과 교검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수련 중에 너무나 짧고 아쉽게 대련을 할 경우, 서로의 합의에 의해서 추가로 교검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아까 맞아서 졌기에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다시 상대방에게 대련을 청하는 "복수전" 과는 완전히 다르다.
상호간에 몸을 부딪치며 수련을 하는 검도는 삐뚤어진 승부욕에 사로잡힌 칼과는 서로간에 배움과 교검이 되지를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하고 불쾌한 감정이 생길 뿐이다.
더욱이 만일 시합장에서 처음 만나 한번 스치고 지나가는 칼이 아니고 같은 도장이나 수련 공간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이 그런 칼을 쓴다면, (기분 나쁘려고 상대방과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기에) 검도를 수련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측면에선 그런 생각으로 칼을 쓰는 사람과는 서로를 위해서 가급적 대련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한다.
검도 대련을 왜 "교검"이라고 할까? (굳이 "교검지애" 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진솔하게 몸을 부딪치며 수련하는 검도이기에 단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나에게도 공부가 되어 함께 하고픈 칼이 있는가 하면 대련을 하면서 그리고 하고 나서도 불쾌함만이 남는 칼이 있다.
만일 검도 수련자가 시합 승패와 점수내는 승부가 중요한 전문 검도선수가 아닌 일반 사회인 수련자라면 이런 생각을 좀 해보면 어떨까 한다. 검도 대련과 교검은 자신의 자존심과 승부욕을 나타내는 칼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검도를 수련하는 분들이라면 한두번씩 경험해본 일이 아닌가 한다. 나 역시 내년 6단 심사를 준비하는 중이기에 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을 하고자 한번 더 생각을 해본다.
* 다시 말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따라서 나와 다른 각자의 생각과 칼이 있음을 존중한다.
**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호간에 배움과 교검이 이루어지지 않는 칼과의 만남은 반갑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