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땀> 치유, 내가 선택하는 50%의 가능성

그래픽 노블 <바늘땀>

by 박소연

부모와 자식은 50%의 유전자를 공유하기에 외모뿐 아니라 질병도 상관관계가 높다. 자녀는 부모에게 생명을 얻고 보살핌을 받아 성장하고, 독립한 후에도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찾아 안부를 묻고 보살핀다. 그러나 어떤 가족관계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성인이 되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부모와의 관계를 탐색하다가 자신이 망가진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부모의 인간적 결함을 어린 시절에는 이해할 수 없고, 상처를 이미 받았으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모는 어떨까? 혐오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식이 그대로 빼어 닮았을 때, 모성(부성)과 자신에 대한 혐오 중 어느 쪽이 더 클까?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원망과 적대감, 원한이 쌓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윤세라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그래픽 노블 <바늘땀>의 데이비드는 여섯 살이다. 단순한 성장기라고 하기에, 섬세하고 놀라운 통찰력과 고통이 담겨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성향을 벗어나 자신의 힘과 선택으로 악순환을 벗어나는 분투하는 과정이다.


데이비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푹 빠져 앨리스 놀이를 하면, 이웃들은 아이들을 불러들인다. 데이비드는 앨리스처럼 동물들과 꽃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환상의 나라에 가고 싶을 뿐이다. 데이비드에게 관심을 두는 아이들은 그를 놀리거나 해치려 하는 녀석들뿐이다.


데이비드의 할머니는 정신병이 있다. 증조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이따금씩 분노에 휩싸였는데, 그럴 때마다 분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섬세한 소년은 엄마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일찍부터 알아챘고, 자신도 자주 앓아눕는 것으로 표현 방법을 찾았다.


어린 소년은 엄마의 지독한 훈육과 통제, 의사 아버지의 거친 치료 방식이 사랑의 표현일 것이라 믿지만 혼란스럽다. 소년의 목에 생긴 바늘땀은 무책임한 부모와 정서적 폭력의 결과이고 상징이다.

<바늘땀> 데이비드 스몰, 미메시스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더 깊게 파이고 오래 곪고 썩어 문드러진다. 태어날 때부터 피로 맺어진 관계, 그 특별함과 깊은 인연 때문에 더 빠져나오기 힘들다. 데이비드는 반복해서 같은 꿈을 꾼다. 당혹감과 절망감으로 끝나는 이 꿈은 마치 부모에게서 경험하는 깊고 어두운 절망감 같다.


열다섯 살에 데이비드는 전문 상담사 흰 토끼를 만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지만, 데이비드의 흰 토끼는 데이비드를 현실로 이끌었다. 소년은 가족의 피를 따라 흐르는 광기를 이해하고 관찰하고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 간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내면과 외면의 목소리를 되찾는 고군분투에 데이비드를 응원하게 된다. 단단해지는 자아, 포기하지 않는 소년의 생명력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영감을 남긴다.


많은 사람에게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가장 큰 요소는 가족이다. 가족으로 인한 억울함, 부당함을 수용하고 자신을 위해 나아간 데이비드의 튼튼한 내면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부모에게 50%의 유전자를 받는다면, 50%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데이비드는 부모에게 받은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대신 일찍 독립해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들과 이웃해 살며 그들을 사랑했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지 않고, 예술가가 되어 자신만의 이상하고 환상적인 나라를 현실에서 펼친다.


<바늘땀>은 부모의 상처와 욕망 때문에 방치된 소년이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 간단한 줄 알았던 수술 후 목소리를 잃었던 저자의 경험을 담았다. 시카고 트리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 호평을 받으며 ‘최고의 책’,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고 아마존에서 ‘최고의 그래픽 노블’ 1위, ‘최고의 책’ 9위에 올랐다. 전미도서상에서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나 혼자> 데이비드 스몰, 미메시스

가끔 책을 뒤부터 보기도 하는데, 마침 옮긴이의 당부가 있었다.

‘만약 당신이 이 책을 뒤부터 펼친다면, 부탁한다. 꼭 천천히 읽어 달라’

주변에 도망치는 어른들밖에 없어 도망치는 방법밖에 모르는 사춘기 소년이 악순환을 끊고 도움의 손을 잡게 되는 이야기이다. 바늘땀과 달리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반복되는 해로운 사이클을 끊는 구조이다. 버림받은 사춘기 소년의 심리가 잘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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