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부잣집 도련님을 체 게바라로 만든 여행

by 박소연

육지로 국경을 넘는 경험


지리적으로 섬과 마찬가지인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지만,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미묘한 변화를 느끼기도 하고, 국경을 넘는 순간 펼쳐지는 다른 언어, 문화에 놀라기도 한다.


열정과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유럽과 남아메리카의 지리가 부럽기도 하다. 더 큰 세상에 속한 자신과 다양한 사람, 문화를 만나는 것은 청년의 인생에 더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캐릭터의 서사를 보여주기에 훌륭한 방법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주제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약속받은 청년 에르네스토가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혁명가 체 게바라가 되는 여행 이야기이다.


모터사이클다이어리-들판.jpg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BD 씨네


책으로 배운 남아메리카를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


24세 에르네스토는 의사 시험을 앞두고 생화학자인 친구 알베르토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아르헨티나의 두 청년은 책으로만 알던 남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기 위해 4개월 동안 8천 킬로미터를 여행할 계획을 세운다.


오토바이 ‘포데로사’는 에르네스토보다도 나이가 많고 기름도 샌다. 친구 알베르토는 이 오토바이와 대화까지 하는 사이. 포데로사는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도랑에 처박힌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혈기 왕성한 두 청년과 짐을 가득 태운 노년의 포데로사는 걸핏하면 고장 나고 넘어진다.


결벽에 가깝게 정직한 에르네스토와 달리 알베르토는 낙천적이고 삶을 즐길 줄 안다. 30세로 나이가 조금 더 많기도 하지만, 친화력이 좋고 허세는 기본, 거짓말도 청산유수다. 찝찝하던 에르네스토도 여행하며 알베르토에게 장단 맞추는 기술이 늘어간다. 돈도 없고 계획보다 여행은 훨씬 길어졌지만, 두 청년은 여행을 계속할 생각이다.


모터사이클다이어리-일기.jpg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BD 씨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 삶, 자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의사라는 말에 아픈 가족을, 자신의 몸을 보여준다. 죽음이 깃든 몸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환자를 보며 측은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마추픽추에 도착해 뛰어나고 아름다운 잉카 문명에 감탄하지만, 최하층민으로 전락한 원주민의 현실에 분노한다.


여행 중 장렬하게 사망한 포데로사를 버리고 칠레의 사막을 걸어서 건너다가 마주친 부부는 거지꼴인 두 청년보다 더 가난하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빼앗기고 공산주의자라서 내몰린 부부는 광산에 가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에 기대어 떠돌고 있다.


에르네스토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다. 의사로 미래도 보장되어 있다. 안락한 집을 떠나 여행하는 것이 사치이며 부끄럽게 느껴지지만, 에르네스토는 언제나 자신의 출신, 수치심, 분노를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본다.



모터사이클다이어리-걷기.jpg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BD 씨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에르네스토는 감정을 크게 표현하거나 과장하는 법이 없지만, 이 여행은 선하고 인간애가 깊은 그의 마음에 혁명의 씨앗을 심는다. 그는 편안한 삶을 버리고 가난, 질병, 권위와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아무도 헤엄쳐 건넌 적이 없는 강에 맨몸으로 뛰어든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알베르토는 그의 절친이 천식으로 고생해도 포기하지 않는 대견한 부잣집 도련님에서 혁명가가 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세월이 흘러 돌아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 사건, 순간이 있다.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 다시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체 게바라의 동명 여행 기록과 알베르토의 책 <체 게바라와의 여행>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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