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 보이’처럼 산낙지 먹어보기
전통주, 막걸리 마시기
전통시장의 아주머니에서 레시피를 받아 직접 한국음식 만들기, 예를 들면 낙지볶음 같은.
한국식 대중 목욕,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하기
언뜻 보면 한국을 여행하고 싶은 외국인의 ‘한국에서 꼭! 해보기’ 목록 같다. 2021년, 국제적으로 ‘핫’해진 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 솔깃할 일들이다. 70년대 후반,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며 이 모든 것을 마스터한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는 그야말로 힙한 사람이다. 이제는 어려워진, 분식집에서 튀김 먹으며 만화책 읽기, 등목도 있다. ㅋ
‘콜드 바이 어나더 네임’의 원고에는 그가 평화봉사단에 지원해 선발되어 문화와 언어를 교육받는 과정이 나오는데, 한국어 교재도 마땅치 않았던 당시에 그야말로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한국어로 소통하며 맡은 업무를 소화하고, 한국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였다.
1978년 한국에 파견되어 전남 영암에서 결핵환자를 돌보던 그는 쉬는 날에는 월출산에 오르고 사찰을 방문해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돌린저 박사가 보낸 사진 중, 파일 이름을 확인하고 한참 바라보았던 사진이 있다.
원고의 첫 부분에 적당한 사진을 상의했고, 폴더가 도착했다. 그 중 이 사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파일의 제목은 ‘나의 산 My Mountatin.’ 광주항쟁 직후 그는 평화봉사단에서 강제로 사임을 하게 되는데, 이 일로 사임한 평화봉사단은 그가 유일하다. 막막했던 그는 다른 직업을 구하고 새로운 비자를 받아, 한국에 계속 남았다. 한국을 떠나는 것은 너무 쉬운 선택이었다.
킥스타터 펀딩 준비를 위해 화상으로 만난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님은 한국어를 많이 잊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여전히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는 41년 전 한국에서 사용하던 도장도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서 착안해 후원품(리워드)도 구성했다.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 인터뷰
킥스타터 캠페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