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홀로 계신 엄마를 만나러 한 달에 한 번 고향으로 여행처럼 나들이를 하곤 한다. 이번에는 월요일에 남편과 함께 내려와서 인천으로 올라가자고 권했다. 엄마는 손사래를 치신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여행이나 바깥나들이가 부담스러워졌는지 번번이 안 간다고 하셨다.
“처제가 힘든데, 이참에 좀 쉬게 하고, 손주들도 만날 수 있으니 같이 올라가요.”
사위의 적극적인 권유와 결정적인 한 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 가까이 살면서 병원도 모셔가고 반찬도 챙겨주는 막냇동생이 많이 지쳤다. 그걸 알기에 동생 좀 쉬게 하자는 말에 기꺼이 인천행을 받아들였다. 농사일도 내려놓고, 반찬 만드는 것도 자신 없어 딸에게 의지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동생에게 늘 고맙고 미안해하시는 엄마다.
마지막으로 인천에 오신 지가 언제인지, 10년 가까이 되어가나? 사위는 딸네 집에 와서 마음 편하게 지내시라고 살갑게 말한다. 그래도 엄마는 30년 사위가 아직도 만년 손님처럼 어려운지 다 내려놓지 못한다. 일주일을 약속하고 인천으로 올라온 엄마의 인천살이가 2주간으로 연장되었다. 이번에도 공헌자는 사위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엄마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고 식사도 잘하신다. 시골에서 혼자 지내다가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불편한 아파트 생활도 참아내신다.
평생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억척같이 힘든 일을 해내신 울 엄마. 작고 여린 몸집이지만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키워 독립시켰다. 자신을 조금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아온 일생이 정말 존경스럽다.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육신은 여기저기 아픈 구석이 많다. 팔십 중반에 이르러 약해지고 병든 당신의 몸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 먹는 약도 많고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녀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무력해진 자신이 답답하기만 하다. 누군들 그러지 않으랴. 안쓰럽고 안타깝고 죄송할 뿐이다.
오늘 엄마가 만다라 컬러링을 열심히 하신다. 호미를 내려놓고 색연필을 손에 들었다.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이 색 저 색 바꿔가면서 꼼꼼하게 색칠한다. 완성된 작품을 수줍게 보여주신다. 내 눈에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보인다.
“우리 엄마, 예술가네. 색깔을 아주 예쁘게 잘 칠하셨어요.”
딸의 엄지 척 칭찬에 수줍게 웃으신다.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이다. 정말,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우리 엄마의 걸작이다. 엄마의 인생도 힘들고 어려웠지만 컬러링처럼 멋지고 아름다웠다고, 사랑 가득 담아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