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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나무 Jun 27. 2024

지금도 잘 놀고 있나요?

바나나 선생님


#『바나나  선생님』 도쿠다 유키히사 글. 야마시타 고헤이 그림. 김보나 옮김. 북뱅크



바나나 선생님 그림책 표지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복합적이고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만난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참 잘 논다. 가만히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이들은 놀이에 특화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공부시간에 조용히 있는 아이들도 쉬는 시간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놀랄 때가 많다. 점심시간에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고, 두 눈 가득 즐거움의 여운이 담겨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놀이를 함께 하는 선생님을 친근하게 생각하고 좋아한다. 공기놀이를 같이 하거나 실뜨기를 상대해 주면 엄청 좋아한다. 쉬는 시간마다 실뜨기를 하자고 달려온다. 긴 줄넘기를 돌려주거나 꼬마야 꼬마야 줄넘기를 같이 하면 아이들은 더 열심히 한다. 예전 학교에 아침이나 방과 후에 아이들과 축구를 같이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학교에서 인기 최고이었다. 아이들은 그 선생님이 좋아서 줄줄 따라다녔다. 대부분 선생님들도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도 있으나, 교재 연구나 생활 지도, 또는 해야 할 일에 밀려서 그럴 시간이나 에너지가 남아있지 못하다. 이래저래 아쉽다.


도쿠다 유키히사와 야마시타 고헤이가 함께 만든 『바나나 선생님』에는 잘 놀아주는 선생님과 잘 노는 아이들이 나온다. 하늘땅 유치원에 새로 온 바나나 선생님은 온몸으로 아이들과 놀아준다. 해님 반 선배들에게 밀린 별님 반 아이들은 신이 났다. 바나나 미끄럼틀, 바나나 시소, 바나나 그네까지 별님 반 아이들의 표정은 자랑스러움과 즐거움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이야기 전개는 단순하지만 그림과 함께 보면 유쾌하고 재미있다. 단순하고 시원시원한 그림이라 아이들도 무척 좋아할 듯하다. 감자, 가지, 토마토, 당근, 양파 등 우리 생활 속에서 흔히 만나는 야채들이 아이들 모습으로 나온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개성 있고, 표정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뾰로통하고 삐진 모습, 즐거워서 통통 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림책 수업을 생각하는 교사나 부모라면 활용하기 좋은 소재가 많다. 나는 어떤 채소를 좋아하고, 어떤 채소는 싫어하는지, 나는 어떤 채소 캐릭터를 닮았는지 이야기해도 좋을 것이다. 1-2학년 아이들이라면 모양과 소리를 흉내 내는 말을 찾아보고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기에도 꽤 괜찮다. 부러운 마음에 함께 놀자고 하는 해님 반 선배들을 어떻게 할지 까닭을 들어 말하기 활동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나나 선생님 한 장면

이런, 재미있는 그림책을 앞에 두고 어떻게 수업하면 좋을지부터 생각하다니... 아이들과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데,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 쪽에 가까운 게 틀림없다. 오랜 학창 시절을 지나면서 잘 놀아주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 나도 누군가의 선생님으로 긴 시간 살아왔다.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초임시절에는 분명히 나도 잘 놀아주려고 했던 것 같다. 예전 학교는 토요일 수업이 있었다. 6학년 첫 제자들과 매주 토요일 4교시에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책가방을 스탠드에 던져놓고, 남녀 고르게 편을 나누어 발야구를 하였다. 더위나 추위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열심히 공을 차고, 달리고, 승부를 가르기 위해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나게 놀았다. 30대 성인이 되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제자들과 오랜만에 만난 적이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토요일 발야구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즐겁게 놀았던 시간은 행복 호르몬을 활발하게 나오게 하여 장기기억에 저장되나 보다. ‘노는 인간’ 또는 ‘놀이하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고 한다. 요한 호이징하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연령대든 인간에게는 놀이가 필요하다. 잘 놀 줄 알아야 그 기쁨의 에너지로 활기차게 생활하는 걸 내 경험을 통해 체감하고 있다.


최근에 수도권에 사는 몇몇 친구들과 대학교 은사님을 만났다. 무려 36년 만의 만남이다. 20대 초에 만난 교수님은 머리가 히끗하여 지금은 엄청 늙은 모습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87세 나이가 무색하게 피부도 맑고 정정한 백발의 노신사의 모습이었다. 기억력도 좋아서 그 시절을 어찌나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오래전 함께 했던 동료들, 학생들 이름까지 정확하게 말하며 우리가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셨다. 학교와 학과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학생들이 어려움 없이 공부하도록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열정과 헌신을 발휘한 이야기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지금도 매일 6000보 이상 걷기, 친구나 동료를 만나 즐거운 시간 갖기, 지적인 활동 멈추지 않기 등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여 감동을 받았다. 나도 이제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신 선생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어느새 중년기를 지나가는 우리도 인생이라는 긴 놀이를 함께 하는 동지가 되었다.


해님 반 선배들을 끼워주고 같이 어울려 잘 놀고 돌아가는 길, 별님 반 아이들끼리 나누는 대화에 공감백배다.

"바나나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이야! 그치?"

바나나 선생님 뒷장면


Q 당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현재 놀이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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