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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Nov 12. 2024
새와 물고기 노니는 서귀포 왈종미술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왈종미술관에 닿았다.
서귀포에 닻을
내린 지
사흘째였
다.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키 늘씬한 야자수와 종려수, 게다가 늙은 올리브나무와 로즈메리 같은 허브 때문일까.
정원에 들자마자
느낀
첫인상은, 프랑
스 풍 혹은 스페인 같은 먼 나라 내음이 물씬
묻어
났다.
뜰에 선 알록달록 채색된 목조각 새들에서는 이승이 아닌 저승의
소리가 들려왔
다.
그것은 어하딸랑 곡소리에
딸려
떠나가는 상여 네 귀에 조각된 새를 연상시켰다.
경계를 허물어뜨린 화가,
거기
가 어쩌면 화가가 꿈꾸는 피안의 세계였을지도.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 모든 세상 만물은 하나로 평등하다는 뜻일까.
왈종미술관, 건물도 특이한 데다 뜨락이며 글씨체도 그렇고 아무튼 이국적 정서에다 강렬한 한국적 색채가 혼재된 기묘함이
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그의 세계는 격의 없이 무한 자유로웠다.
무애심, 그랬다.
그는 무애심을 닦는 수행자였다.
지붕 꼭대기에 정좌, 남해 향한 관음상이 아니라도 곳곳에서 읽히는 반야심경.
마침내 화가는 그 묘법 증득하였던가.
그리하여
현실과 환상을 자재로이 넘나드는 밝은 화면.
물고기가 너울너울 날아다니고 연꽃은 인물보다 월등 크다.
매화꽃 성글게 핀 가지 사이로 배와 자동차가 걸림없이 넘나 든다.
무구한 동자승의 풀꽃 같은 미소 담겨있어 천국이 바로 예로구나 싶다가도
,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안방에서 티격태격하는 가정사 드러나는가 하면 한쪽에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코너도 있어 예가 바로
소돔이군
, 싶어 진다.
그러나 아주 잠깐 사이에 흘러가는 단상이다.
항상 그의 화면은 생기발랄하고 평화롭고 흔쾌하고
해맑은
행복감이 흘러넘친다.
에덴동산이
그러할
듯이.
사슴 뛰노는 언덕에 기어 다니는 뱀조차 사악하지 않을 거 같다.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는다는 이사야서 말씀처럼.
그런가 하면 원시의 혼을 불러올 거 같은 타악기 소리와도 닮은 그림에선 야성의 날 것을 대하듯 한 생소함에 대한 충격파도 적잖았다.
하지만 미술관을 도는 내내 나만의 샹그릴라를 가꿀 수 있었기에 꽤 한참을 거기 머물렀었다.
작품 속 색이 하도 밝고 화사해서 보기만 해도 어린아이처럼 단순히 기분 좋아지기에.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폭포 구경 온 사람들이 타고 온 차가 빼곡하게 들어찬 주차장 앞.
정방폭포 힘찬 물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 위치한 건물은 외형이 꽤 특이하다.
스위스 건축가 Davide Macullo와 건축 설계사 한 민원이 공동 작업한 이왈종 미술관은 조선백자를 주제로 삼았다.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라는 단일 주제로 서귀포에서 이십여 년 작품 활동을 해온 이왈종 화백.
중도는 양극을 피하는 것이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며 연기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생기는 인연의 이치를 말한다.
서귀포에 만난 자연은 그의 화풍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뿐더러 생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동양화가인 그는 수묵채색 작업의 원화, 부조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작업으로 동양화를 현대화와 접목시켰다.
미술에 대한 안목은커녕 그림에 대해 뭘 알랴마는.
아는 체하며 중언부언 사족 다는 대신 이 한마디.
녹피에 가로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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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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