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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15. 2024

어처구니가 있는 고궁

갈수록 줄임말, 제목 줄여 부르기가 대세더이다. 미드는 미국 드라마, 미사는 알고 보니 드라마 제목으로 미안하다, 사랑한다였더라오. 심지어 점메추는 점심 메뉴 추천이라니 뭔 소린지 알아나 먹겠더이까. 이리 급하고 다들 바쁜 세상에 줄줄이 길게 늘어놓는 사설 읽어줄 이 어디 있겠소. 소설도 탕약 짜듯이 요약해 놓은 다이제스트판이 있지 않소이까. 오늘 조선 궁궐 얘길 하려니 아무리 농축시켜도 이게 한 바지게 거리라, 다들 지레 겁먹고 도망칠 거 같은데 오백 년 역사가 서린 궁궐이니 어쩌겠소. 하여간 최대한 간추려 엑기스만 뽑아보리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이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 경회궁 이렇게 다섯이 있었소이다. 다섯 궁궐을 다 섭렵할 여유가 없어 일단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창덕궁부터 찾았더이다. 궁에는 한복 우아하게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한유롭게 거닐더이다. 영화를 찍나 했더니 이 또한 요즘 뜨는 트렌드, 하나의 유행이라 합디다. 휴일엔 식구수대로 한복 입고 기분 내는 가족들도 흔하다 하외다. 한복차림으로 방문하면 궁궐 입장료가 면제된다 쓰여있기도 하더이다. 해서 인근 북촌에는 한복 대여점이 성업 중이라 하오. 한참 전 중국 이화원에 놀러 가서 황금색 황제복 빌려 입고 당시는 사진만 찍었는데 한국은 진일보, 입맛대로 자기가 원하는 의상을 대여해 온종일 입고 다닐 수 있답디다. 물론 집에서 제옷으로 치장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는데, 올림머리까지 완비하고 즐기는 하루 왕족놀이도 이색지겠으나 왠지 겸연쩍어 이 옵션은 극구 사양했다오.



전체가 사적 제122호인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이외다.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창건했으나 제2대 정종은 옛 도성인 개성으로 수도를 옮겨버린다오. 제3대 태종은 1404년 다시 한양 천도를 결정하는데 기존의 왕궁인 경복궁에서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 등 사건이 났었기에 이를 꺼린 태종은 정궁을 놔두고 새 궁궐을 짓게 된다오. 창건 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은 공식행사를 치르는 곳이라 권위를 상징하여 높다랗게 지었고, 그밖에 정사를 보는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왕비의 생활공간인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을 쓰임에 맞게 짓는다오. 궁궐의 필수 건축물부터 완공시킨 후 이어서 1406년 들자마자 태종은 후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하오. 복잡다단한 국사로 골치 아픈 날은 자연을 완상하며 머리를 식히고 싶었을 법도 하외다. 태생이 호방한 태종답게 1412년에는 정문인 돈화문(보물 제383호)을 거창하고 듬직하게 세운다오.


그러나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이니 난리가 나면 맨 먼저 공격대상이 될 터, 이렇듯 임진왜란 당시 거의 모든 궁이 불탄다오. 헌데 소실된 궁궐들 중 제일 먼저 복구를 시작한 것은 창덕궁으로, 경복궁은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의견이 많아 제외됐다 하외다. 긴 세월 동안 만고풍상을 겪게 되며 왕궁은 도중에 소실도 되고 재차 중건도 되고, 상처로 얼룩진채 오늘에 이른 조선 궁궐들이라오. 돈화문, 인정전, 선정전(보물 제814호) 등 많은 건물들은 다행히 원형 그대로 남아 있기에 사적으로의 가치도 높은 창덕궁. 특히 인정전은 국보 225호로 지정되었다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물들을 앉힌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평가받고 있소이다. 또한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 하오. 후원이 창덕궁 전체의 60%나 차지할 정도로 드넓은 데다 이같이 한국만의 독특한 궁궐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밀치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더이다.


행간의 사연들 다 털어내고 두 문단으로 축약에 성공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어처구니가 있는 이바구를 풀어놓겠소. 흔히 기가 막힐 때 우린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다오. 헌데 그와 다른 또 하나 어처구니가 있습디다. 도대체 고궁에 가서 뭘 봤기에 어처구니 타령이람? 하긴 창덕궁에 가서 어처구니를 만났다면 그게 무슨 소리야? 반문부터 하시리다. 궁중의 전각구경하러 간 창덕궁이었소이다. 거기 가면 응당, 문무백관이 품계석 앞에 시립해 있는 상상을 하며 인정전 건축미에 빠져야 마땅한데 어처구니없게도 실제로 어처구니를 만났더이다. 전통색깔인 오방색 고풍스런 단청과 날렵하게 치고 올라간 추녀선을 집중적으로 담으려 사진을 찍다가 지붕 위 괴이쩍게 생긴 형상들에 시선이 꽂혔던 거외다. 사물은 저마다 고유의 이름, 명칭이 있게 마련이라오. 궁금한 거 참지 못하는 성격, 근처를 지나는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어처구니라는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오.


어처구니란 원래 궁궐 건축물의 지붕 위 처마 끝머리에 조르름 장식해 놓은 토우를 말하는데 잡상이라고도 하더이다. 이 어처구니들은 갖가지 다른, 온갖 형상들이 모여 있다 하여 잡상(雜像)이라 부른다 하오. 잡상은 중국과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 중국에는 일반건물에도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중요한 전각에만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합디다. 중국은 황제가 기거하는 건물엔 잡상이 11개, 세자의 경우는 9개, 그보다 격이 낮은 경우는 7개로 딱 정해져 있다고 하나 우리나라는 이 같은 규칙은 없다하였소. 건축물 지붕에 잡상 등의 장식 토우를 설치하는 것은 건물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도깨비나 악귀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주술적 의미도 담겨있다 하외다. 한편 가만 생각해 보면 근사하게 집 한 채 잘 지어놓고 나서 턱 하니 이런 물상들 늘어놓음이 어딘가 장난스럽고 귀엽지 않소이까. 묵묵히 공사 마무리진 대목장이 짐짓 부려본 객기요 능청스러운 해학이 아닐까 싶소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전각, 혹은 숭례문 같은 문루의 기와지붕 귀마루 쪽을 보면 사람 형상이나 기묘한 동물의 모양을 흙으로 빚어 구워만든 토우들이 이처럼 한 줄로 늘어서 있음을 볼 수 있다오. 이게 어처구니, 대부분 서유기에서 차용해 온 상들이라 하더이다. 잡상이 서 있는 순서를 보면 대당사부라는 삼장법사가 맨 앞에 합장하고 구부린 자세로 엉거주춤 섰더이다. 그 뒤로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등이 불길한 재앙이나 잡귀를 물리치려 눈 부릅뜨고 사방을 엄히 경계하고 섰다오. 건물에 따라 수량도 각각인데 적게는 세 개부터 많게는 열한 개까지 음수인 홀수로 올려져 있다 하오. 경복궁 경회루에는 11개, 숭례문 9개, 창덕궁 돈화문 7개, 창경궁 홍화문엔 5개가 올려져 있다하외다. 앞으론 궁 나들이 나서면 꼬박꼬박 어처구니 챙기면서 몇 개인가 숫자부터 헤아릴 거 같소이다. 이후 창덕궁은 한 단어, 어처구니로 집약되고 말았으니 궁궐 지붕만 보고 온 셈이 돼버렸소만 그래도 어쩐지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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