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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Dec 13. 2024

丹 그리고 세도나


너무도 잘 알려진 세도나,

기아의 미니밴 이름이기도 하지만 달리 설명이 필요없는 지역이지요.

들뜬 관광지이기보다는 차분히 자기 안뜰을 맑히는 사색과 휴식을 통해 힐링 기운을 충전받기 위한 곳이구요.

지구 에너지가 강력하게 소용돌이를 치며 방출된다는 세도나 어디서나 신비한 기를 느끼게 되는 것은 세도나 자체가 온통 붉은 바위산(Red Rock)으로 이루어져서이겠지요.

철분이 함유된 사암으로만 형성된 지질이라서 산은 물론 흙마저도 붉은 황톳빛이잖아요.

붉다는 건 에너지를 뜻하며 에너지는 기운이고 힘이고 丹으로 표현되지요.

일편단심, 결코 변치 않는 충절을 나타내는 붉은 마음은 곧 정몽주 선생의 丹心歌를 떠올리게 하구요,

구한말 황성신문 논설위원으로 언론을 통해 계몽운동을 펼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몸 바친 신채호 선생의 호는 丹齋이셨지요.

또한 丹田이라 하면 몸의 뿌리를 지탱해 주는 붉은 기운이 있는 자리로 단전호흡은 내공심법 운기조식 등 양생법과 맥을 같이하는데요.

그래서인지 국선도나 단학을 하는 이들이 한국에서부터 일부러 찾는 세도나이기도 하더라구요.

하긴 제가 미국에 오기 전인 90년대 이미 익숙해진 지명인 것이, 그때 벌써 '세도나 명상여행'이 붐을 이뤘거든요.

캘리포니아로 이사와서 그 유명세를 확인하러 세도나를 서너 차례 찾았는데, 그중 한 번은 기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기를 뺏기고 왔네요.



바로 꽃무릇 이 꽃에 홀려서랍니다.

꽃무릇을 더러는 상사화라고도 하는데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까닭에 그리 부르나

정확히는 석산 (石蒜, 학명: Lycoris radiata)이지요.

이 꽃을 처음 만난 곳은 오래 전의 선운사였구요,

그때 고혹적인 색깔과 자태에 반해 한동안 거기 붙박여 있었지요.

어느핸가 다시 이 꽃을 보았는데 해운대 넘어 기장 해변가, 벼가 누런 논두렁에서였답니다.

당연히 길길이 반기며 사진을 찍겠다고 내달려 쫓아갔지요.

처연하도록 매혹적인 빛,  요사스러운 불꽃처럼 타오르는 진주홍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눌러대느라 정신없었는데 문득, 어쩐지 기분이 서늘해지며 느낌이 이상했어요.

꽃무릇 그늘에 똬리를 튼 선명한 초록색깔의 비암을 본 건 그때, 끼약~ 비명을 지르며 튕기듯 도망쳤지요.

얼마나 놀랬던지 한참토록 심장은 벌렁벌렁~ 다리는 후들후들~ 맥이 좌악 풀리는 게  진정이 안되더라고요.

꽃에 취해 발치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뿐더러 암튼 보호색으로 위장을 했는지, 늦여름 무성한 풀섶인 줄만 알았는데 거기 혀를 날름거리던 초록빛의 윤기야말로 얼마나 소름 끼치던지요.

제철 맞아 무성한 꽃무릇을 세도나 상가 정원 테라스 기둥 옆에서 보자마자 하필 그때의 섬뜩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뭡니까.

미국에서 사용하는 목재 기둥은 매끈히 대패질한 한국식과 달리 숭숭 칼집 같은 걸 전면에 낸 다음 흰개미 방제약을 도포하고 나서 자주색 페인팅을 해 눈에 확 띄는데요.

날개가 달린 흰개미는 목조 건조물에 막대한 피해는 주는 해충으로 나무의 셀룰로오스를 갉아먹어 목재를 푸석푸석하게 만드는 골칫거리라 무척 신경을 쓰지요.  

천리타국 세도나 상가 테라스의 자주색 기둥에 바짝 기댄 꽃무릇을 만난 것까지는 반가웠지요.

허나 논두렁에서 비암을 본 이후 천경자의 그림조차 괜히 섬뜩해지곤 했는데 세도나 꽃무릇 역시도 오싹해지게 되더군요.

쩌르르 영험한 천기를 받기는커녕 머리끝이 쭈뼛해지며 지니고 있던 氣마저 달아날 판이라 사진 한 장 찍고 얼른 그 자리를 물러났네요.

붉은색은 부요와 열정과 에너지의 상징이기도 하나 한편 사위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어 위험과 경고를 의미하지요.

 진홍빛에 지질려 그만 녹작지근 풀려있던 무릎은
그날 저녁 콜로라도 강가 숙소에서 뜨거운 물로 다스려 겨우 안정을 되찾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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