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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풀꽃은

1987

by 무량화

밋밋하게 이어진 들판길.

풍경마저 단조로워 한결 춘곤을 보태는 오후, 차소리조차 뜸한 국도를 달렸다.

감포가는 길은 호젓한 우리 땅의 정감을 고스란히 품었다는데 가물가물 오수로 흐려지는 시야.

길가의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면 자칫 그대로 스쳐 지났으리.

봄 들녘을 지키는 삼층 석탑이 대칭 이루고 선 낮은 언덕 위의 빈터. 감은사지였다.

적막강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근에 마을이 있고 볼이 튼 아이 서넛 뛰놀고 있지만 허망하리만치 가득 서려 있는 서늘한 고적과의 상면.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옛 자취는 마모된 채 잊혀져간다. 마련 없이 잊혀져간다.

인간의 영고성쇠를 읽듯 한 안타까운 회포에 젖어 거슬러 올라가 본 옛날.

때는 아득히 먼 신라 시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고 채 다스리지 못한 왜구에 대한 염려로 죽어서 동해를 지키는 용이 되시고저 한 문무왕.

부왕(父王)의 충정에 거듭 감읍하여 그 뜻 기려서 보은의 마음으로 세웠다는 감은사.

지극한 효의 발원이었던 감은사는 지금 겨우 흔적만 남아 옛일을 더듬어 헤아려 볼밖에는 없다.

아버지 모셔진 동해와 연결돼 있었다는 금당에다 질서 있게 깔려있는 장방형 주춧돌로 하여 그 규모의 방대함을 추측해 본다.

그 옛날 장엄하던 한 가람이 어찌 이리도 허무히 초토로 변했을까.

홀로 지켜온 역사가 차마 가슴 저미는 듯 먼 하늘만 보고 섰는 탑신.

수많은 작은 돌 다듬으며 기단 쌓고 낱낱의 염원 새겨 포개 올렸을 삼층 석탑.

모서리 깨어진 채 고요하고도 전아한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서있다.

좌우로 살펴도 이곳은 전혀 절터답지 않은 위치.

여느 절처럼 태산준령 깊은 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숲 그윽한 산자락도 아닌 그저 헐벗은 언덕 위의 평지일 뿐.

아마도 그건 수중 왕릉 멀리서 나마 뵈옵고저 한 뜻이었으리라.

매양 아버지 넋이 보고 지워 산줄기 사이로 동해가 훤히 보이는 이 터를 고르고 골랐을 신문왕.

머언 바닷가 그 바위에 몸 부딪는 물살이라도 보고 싶던 간절함이 내게도 숙연히 전해온다.

문득 그 파도 자락 여기까지 밀려오는 듯한 환상에 고개 숙여 발밑을 보니 빈틈없이 깔린 클로버 냉이꽃 그리고 무더기 진 제비꽃의 사태.

왠지 그 풀꽃 무리는 뜻 없이 피어난 예사로운 꽃이 아닐 것만 같다.

기상 맑던 신라인의 영혼일까. 아니면 감은사를 구성했던 주추들의 숨결일까.

이 터를 못내 잊지 못하고 몇 세를 감돌다 기어이 예 돌아와 감은사지 풀꽃으로 피어났으리.

그리 보아서인지 작은 꽃송이마다 석탑 향해 살푼 낮춘 모습이 자못 공경스럽다.

풀꽃 잎잎에 내려와 머무는 봄볕.

감은사지가 아닌 감은사를 보았더면 하는 아쉬움 지그시 누르고 돌층계를 내려서며 돌아 본 빈터.

새 한 마리 봄 하늘을 선회하는 날갯짓이 그래도 아름다웠다.<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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