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제주시에 볼일이 있어 516 도로를 타고 한라산을 넘어갔다.
그제부터 비는 하루종일 고요히 내렸다.
궂은 날씨였으나 이미 예약을 해둔 일이라 기상이 이만만 한 것도 다행스러웠다.
볼일을 마치고 점심까지 든든히 해결한 터, 운동 삼아 한라생태숲을 걷다 가기로 했다.
빗줄기 추적거린다면 엄두 낼 계제가 아니겠으나 마치 봄비처럼 부드러이 스며드는 안개비였다.
이른 봄 연리목 옆에 군락 이루어 노랗게 피어나는 눈색이 꽃 소식도 알아볼 겸 내심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안내소에서는 입춘 지나고도 한참 더 있어야 복수초 노루귀 꽃잎 열릴 거라고 했다.
우산을 쓴 남녀가 내 뒤를 이어 코스 안내를 부탁하는 질문이 길었다.
그들 외에는 흠씬 비 젖은 생태숲엔 인적 드물어 아주 고요했다.
자주 다니는 길이라 적적하거나 휘휘하지는 않았다.
지자체에서 규모있게 공원 탐방로를 만들어 놓은 바운더리 안이다.
그 점이 일단 미더워서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한다.
호젓한 숯모르길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다.
절기상 벌이나 비암 또는 들개 출몰 염려도 없다.
느릿느릿 걸으며 비로 인해 생기로워진 이끼 무리도 사진에 담아보고 마른 수국꽃 이파리며 열매에 매달린 물방울도 찍어본다.
타 시선 의식지 않아도 되는 만만한 여건이어야만, 이리 오래 골똘히 들여다보거나 숨 참아가며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의 열락이라니.
생태숲은 갓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중.
멀리 숲길 깊숙하게 따라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잠시 비안개 더불어 고즈넉한 분위기 즐겨보자는 우중 산책일 따름.
안개와의 데이트는 멋지나 심신 습습하게 눅져 그리 오래 할 생각은 아니 들었다.
그럼에도 숲에 취해 좋이 한 시간여를 머물렀다.
사진 찍느라 오른쪽 옷소매와 패딩 밑자락은 눅진하게 젖었다.
운동화도 축축하다.
빗발이 좀 굵어져 비로소 빠르게 숲길을 벗어났다.
안내센터를 통과하고도 자욱한 안개는 내처 날 따라왔다.
평소 곧잘 오르곤 한 전망대는 조망권 전무인 기상상태라 패스하고 차도로 향했다.
한라산은 숲안개로 신비감 덧보탰다.
그새 내일이 입춘이니 이제 봄, 봄, 봄..